수도승·의사… 신출귀몰 도피행각
박창규 기자
수정 2008-07-23 00:00
입력 2008-07-23 00:00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실은 긴급 성명을 내고 “카라지치가 21일 밤 베오그라드 모처에서 세르비아 보안요원들에게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체포 정황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세르비아 일간 폴리티카는 “그가 길게 기른 수염과 검게 염색한 머리로 여행용 가방을 멘 채 어디론가 떠나는 행색”이었다면서 아무런 저항없이 체포에 응했다고 전했다.
카라지치는 지난 13년 동안 수많은 소문과 추측 속에서 국제사회의 집요한 추적을 조롱이라도 하듯 따돌려 왔다. 도피 초기 어린 시절을 보낸 몬테네그로 북서부 산악지대에 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은색 장발을 깎고 수도승으로 변장하며 도피 행각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BBC는 그가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드라간 다비치란 가명으로 개인병원에서 대체의학 의사로 일하며 위장 생활을 해왔다고 전했다. 세르비아 정교회 성직자들이 적극적으로 보호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누가, 어떻게, 어디서 그를 보호했는지 구체적인 정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보스니아 사라예보, 베오그라드는 물론 러시아 모스크바, 체코 프라하로 도피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한때 독일 일부 언론은 “북한으로 피신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가 오랜 도피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세르비아 정부의 암묵적 지원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도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그를 전쟁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전범들의 도피 행각은 세르비아 정부와 군부의 비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며, 카라지치의 경우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안 잡는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져 왔다.
그러다 세르비아에 친(親)서방 성향의 타디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전범 체포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세르비아 정부가 카라지치를 체포한 이유는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사전 절차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U는 전범 용의자 카라지치 체포를 EU 가입의 전제 조건으로 달았다. 세르비아는 지난달 EU 가입 예비 협상인 안정제휴 협상에 서명하고 EU 가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비에르 솔라나 EU 외교정책 대표는 “체포 소식에 크게 만족한다. 세르비아의 새 정부는 새로운 세르비아를 대표하고 있으며,EU와의 새로운 관계를 표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체포가 세르비아의 EU 가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한 셈이다.
한편 국제사회는 카라지치의 체포 소식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보스니아 인종청소의 주범 라도반 카라지치 체포는 희생자들을 위한 “역사적 순간”이라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반 총장은 이날 발표된 성명에서 “카라지치 체포 소식에 고무됐다.”면서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 국제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자들이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는 점을 확인시킨 세르비아 당국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08-07-2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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