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조카의 칼맞은 정구파(精九派)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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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7-07 00:00
입력 2008-07-07 00:00

신판(新版) 승방비곡(僧房悲曲)은 「호모」로 얼룩졌는데

대처승이 조카 자식을 상대로 8년동안 「호모·섹스」를 강요하다 마침내 그 조카 칼에 맞아 피투성이가 됐다. 16살에 고아가 되어 삼촌인 그 대처승에게 맡겨져 밤마다 시달려 오던 끝에 칼을 휘둘렀다는 조카가 경찰에서 털어놓은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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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면 쫓아내 버릴테다” 한밤중에 온 작은아버지


9월12일 하오 1시쯤 서울시내 영등포 봉천동 ○○사 법당에서 주지스님 하(河)준정씨(40·가명)가 피를 흘리며 뒹굴었다.

겨드랑이와 등허리, 손바닥등 모두 7군데에 칼을 맞고 중상을 입은 하스님은 곧 이웃 H의원으로 옮겨졌고 가해자로 조카 하모군(23)이 잡혀 노량진경찰서에 구속됐다.

『죽이려고 그랬읍니다. 그런 놈은 백번 죽어 마땅합니다』

하군은 취조관에게 거침없이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하군은 하스님의 친조카인데다 천애고아로 하스님이 부모나 다름없이 길러온 처지.

취조관앞에서 털어놓은 하군의 범행사연은-

하군의 고향은 충북(忠北) 괴산(槐山). 3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16살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졌다.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인 하군은 유산이라곤 땅 1마지기도 이어받지 못했다.

별수 없이 작은 아버지인 하스님이 그의 양육을 떠맡을 수밖에. 친척가운데 가장 가까운 일가이기도 했고, 주지스님이어서 비교적 살림이 윤택했던 때문.

당시 하스님은 충북 괴산에 있는 ○○사의 주지스님.

『절의 잔심부름을 해주고 얻어먹고 살게 됐어요. 절 밖에 있는 살림집에는 방이 2간이었어요. 저 혼자 사랑채에서 자곤 했지요』

며칠이 지난 어느날 깊이 잠든 하군은 야릇한 움직임에 눈을 떴다. 누군가 어둠속에서 그를 발가벗겨 놓고, 그의 「심벌」을 잔뜩 움켜 쥐고 있었다. 엉겁결에 놀라 일어나려 하자 우악스런 손이 입을 틀어 막았다.

『조용히 있어. 떠들면 쫓아버릴테야. 그러면 거지가 되고 마는 거야』-작은 아버지의 위협에 하군은 힘을 잃고 말았다.

그의 큰손이 이윽고 하군의 손을 잡아 당겨 자기의 사타구니로 끌고갔다. 하군은 미처 자위행위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었다. 작은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손을 놀렸다.

『처음엔 멋모르고 시키는대로 했는데 갈수록 더욱 이상해 져요. 전신을 만지게 하고 정말 죽기보다 싫었어요』

차차 하군은 작은 아버지가 징그러운 짐승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밤이되면 사형장에 끌려가는 듯한 느낌으로 견딜 수 없었다.

『초저녁부터 다투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실랑이를 벌일때가 하루 건너 한번씩 있었어요. 밤새도록 저를 벗기려는 작은 아버지와 싫다고 피하는 저는 죽자하고 싸웠지요』

도망쳤다간 또 잡혀오고 7년동안을 생지옥 생활

결국 견디다 못한 그는 18살 되던 1962년 봄,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체하고 절을 뛰쳐나와 천안의 외가로 줄행랑. 그러나 그의 행방을 쫓던 스님에게 불과 두달만에 잡히고 말았다.

『그때 외할머니에게 저의 사정을 얘기했으면 될텐데. 저는 만약 제가 그런 소리를 하면 작은 아버지 체면도 있고 친척들이 소동을 일으킬까봐 말을 못하고 끌려 갔어요』

하스님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기가 공부시켜 주려했는데, 공부를 싫어해 집을 뛰쳐 나왔다고 둘러댔다는 것. 그러나 그해 겨울, 하군은 다시 절을 도망쳐 무작정 상경, 남대문 근처에서 구두닦이로 벌어 먹었다.

『63년 봄에 우연히 길가에서 사촌형을 만났지요. 사촌형도 제가 공부하기 싫어서 나온줄 알고 작은 아비지에게 연락을 했어요』

그때 하스님은 청주시 수동의 ○○사로 옮긴뒤였다. 연락을 받은 즉시 상경한 그는 『책임지고 공부시킨다』며 하군을 다시 데려갔다. 이번에는「호모·섹스」의 방식이 진일보, 더욱 하군을 못살게 굴었다.

그달도 채못가 견디다못한 하군은 ○○사를 탈출, 서울의 영등포구 구로동 외삼촌 집으로 도망쳤다.

『그때 처음으로 외삼촌에게 제가 당한 고역을 고백했읍니다. 외삼촌은 그럴 수 없다면서 모두 때려 부수겠다고 작은 아버지를 찾아가 싸웠죠』

그러나 작은 아버지는 『조카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다. 공부하기 싫으니 되레 뒤집어 씌운다』고 펄쩍뛰더라는 것.

“고아된 몸 키워줬다지만 이젠 죽어도 더는 못참아”

『그러면 그렇지 그럴수가 있나』라고 생각한 외삼촌에게 실컷 꾸중만 들은 하군은 또다시 작은 아버지에게 맡겨졌다. 그후에도 공주 갑사로 도망치기도 했고, 부산으로 도망치기도 했으며, 청주의 매형에게도 가있었다. 그때마다 작은 아버지는 끈덕지게 수소문해서 하군의 거처를 알아내고 악착같이 그를 데려갔다. 이러는 동안 친척들이 모두 내용을 알게됐고 작은 어머니 마저도 사실을 알게됐다.

『충주 매형에게 있으면서 자동차학원에 들어가 운전기술을 배웠어요.화물차 조수로 취직해서 그런대로 생활을 했는데, 작년에 작은 아버지가 저의 숨어있는 곳을 알아내고 찾아 왔읍니다』

하스님은 매형에게 정중히 사과하며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맹세까지 했다. 스님의 정성스러운 태도에 넘어간 매형이 하군을 『작은 아버님이 마음을 잡았으니까 돌아가라』고 권했다. 결국 매형의 권유를 따라 서울에 올라왔다.

『여전했읍니다. 그러나 이젠 다 컸으니까 만만하게 응하지 않았지요. 1주일만에 뛰쳐 나와 다시 충주에서 취직했읍니다』

사건이 나기 1주일전, 매형집에 들렀다가 작은 아버지가 편지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선량한 매형까지 괴롭히려는 작은 아버지를 죽이려고 결심한 것은 이때였다고.

그래서 지난 6월12일 아침 충주를 떠나 서울에 와 칼을 사들고 봉천동 ○○사에 뛰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게 짐승이지 사람입니까? 16살때부터 그렇게 악착같이 저의 뒤를 쫓아다니며 추악한 짓을 해온 작은아버지가…』

삿대질까지 하며 지긋지긋한 악몽의 7년을 연상하는 듯 그는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이러한 경우 법은 그에게 과연 어떤 형벌을 내릴것인가?

<식(植)>

[선데이서울 71년 9월 26일호 제4권 38호 통권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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