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촛불과 코드 맞추려면/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연구개발본부장
수정 2008-07-05 00:00
입력 2008-07-05 00:00
정부가 어린 학생과 주부의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해소해 주지 못한 것이다. 소통이 부재한 탓이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반성은 적절한 것이었지만, 원만한 소통의 계기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왜일까? 여러 장애요인이 있었지만 핵심은, 촛불이 삶의 질을 추구하는 데 반해 정부는 경제적 합리성과 행정의 효율성만을 따지고 있어 서로간의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흔히 하는 말로 정부와 촛불 사이에 코드를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엇보다 정부가 대화에 나서야 한다. 대화는 양방향성을 가지는 소통의 대표적인 형태로 대화 당사자 간에 눈높이를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이는 일방향성을 가진 설득과 다르다. 설득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함’으로, 기자회견이나 담화문 발표가 정치적 설득의 주요 수단이다. 촛불시국에서 이를 수단으로 한 정부의 노력은 효과가 거의 없었다.
정부가 대화에 동의한다면 대화 준비를 위한 냉각기를 가져야 한다. 냉각기에는 양측 어느 누구도 그리고 어떤 폭력도 도발 내지는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폭력은 대화와 상극이기 때문이다.
정부측 대화의 주체는? 대학생들과 시국토론회를 한 국무총리가 촛불과 대화를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를 원한다면 촛불도 거부하지 못할(혹은, 않을) 것이며 추가협상, 청와대의 전면 쇄신, 개각 예정 등 대화를 위한 여건도 마련되어 있다. 신임 대통령실장의 ‘소통행보’도 여건 마련의 일환이었으면 한다. 정당들도 국회 안팎에서 대화를 지원해야 한다. 정부와 촛불 모두가 명예롭게 시국을 마무리할 수 있을 때 국회의 명예는 물론 거리의 정치에 밀려나 있던 대의정치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촛불로 상징되는 삶의 논리와 경제 및 행정논리의 충돌은 좌우 대립도 진보와 보수의 대립도 아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정부에는 정책의 기획 및 집행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새로운 정책여건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할 만큼 했고, 참을 만큼 참았다.’는 식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념의 포로가 아니라 이념을 뛰어넘으면서 역사적 과제를 해결해 내는 정부가 진정한 실용정부다.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연구개발본부장
2008-07-0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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