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우리 민족끼리’/송한수 국제부 차장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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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5-07 00:00
입력 2008-05-07 00:00
“문서에 타이완이 중국의 일부분이라고 표기하지 않았다간, 중국인들에게 금세 호통이 떨어지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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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한수 사회2부 차장
송한수 사회2부 차장
왕석동(49) 한국외대 국제학부장의 귀띔에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그가 유엔에서 직원으로 일할 때였다. 한 컨설턴트가 서류에 타이완(Taiwan)이라고 썼다. 익명의 중국 관계자가 보자마자 거세게 항의해 폐기하고 다시 만들어야 했다고 한다. 내용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독립된 나라도 아닌데, 그렇게 표기해선 안 된다며 목청을 높였다는 거다. 결국 중국 땅인 타이완(Taiwan,province of China)으로 바꿨다.

여기에다 홍콩(Hong Kong)이라고만 표현했다가는 중국인들의 항의와 맞닥뜨리기 일쑤다. 중국 땅인 홍콩(Hong Kong,China)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 중국과 타이완이 고위 관계자 방문에 이은 교류와 함께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3월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대표가 총통으로 뽑힌 뒤부터다. 공산당에 밀려 넓이가 3만 5801㎢인 섬으로 달아난 타이완의 국민당 정권이 대륙과 얘기하고 싶어한다니 더욱 신기해질 수도 있다. 또 오늘날의 현실과 이유를 떠나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이번엔 통일로 한 발짝씩 다가서고 있는 남북 키프로스로 눈길이 간다. 두 정권이 조건이 없는 대화를 내걸었다. 면적 9251㎢로 타이완보다 작은 나라다. 남북으로 쪼개진 키프로스는 흥미롭게도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 당나귀 보호를 놓고 남북 주민들이 손을 맞잡았으며 더욱 뜨거운 화해분위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물론 정치적 훈풍을 타고 이런 움직임은 진전되고 있다. 작게 보일지 모르는 일이 뜻밖의 열매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데서 키프로스의 교훈은 결코 작지 않다. 영국 BBC, 프랑스24 등 지구촌의 굵직굵직한 매체들은 지난달 탄생한 당나귀 보호 웹사이트엔 남북 주민들이 앞다퉈 가입하고 있다고 잇달아 보도했다. 키프로스 평화유지를 위해 파병한 터키의 일간 데일리뉴스는 통일로 가는 길에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통일 협상을 하겠다는 지도자들의 말 한마디는 부정적이던 여론까지 돌려 세웠다. 올 2월 당선된 남쪽 드미트리 크리스토피아스 대통령 등장과 더불어 곧장 변화가 일었다. 통일협상을 공약한 그는 두달새 지지율 75%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북쪽 사람들은 60%가 통합에 반대한다는 대답을 내놨었다. 메흐메트 탈라트 대통령이 남쪽에 화답하자 북쪽 주민들도 당나귀 보호 합작으로 힘을 실어 줬다.

마침내 지난 3월21일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열렸다. 수도 니코시아를 남북으로 가르는 레드라 거리의 통행을 재개하기로 하는 등 통일을 향해 발걸음을 성큼 내디뎠다. 로이터·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남쪽 크리스토피아스와 북쪽 최고 지도자 탈라트는 통일 방안을 논의하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했으며,3개월 안에 다시 만나 구체적인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키프로스 사람들로서는 독일 베를린의 경우처럼 장벽이 단숨에 무너져 내린 듯한 느낌을 가질 만하지 않겠는가. 두 쪽은 영토 재분배 등을 둘러싸고 이견이 많아 더 지켜 봐야 한다. 그러나 서로 죽일 듯이 다퉈온 터여서 만남 자체에 적잖은 뜻이 담겼다.

우리나라에선 얼마 전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을 놓고 진보·보수진영이 입씨름을 벌였다. 북쪽이 구호로 쓰는 말을 진보진영이 그대로 쓴다는 보수진영의 비난 탓이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나라를 배제하자는 게 아니다. 같은 핏줄끼리 풀어 갈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하자는 뜻이다. 중국과 타이완, 남북 키프로스 얘기는 입장을 떠나 얼굴을 맞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무게를 갖는다. 서로 미워하다가도 무조건 먼저 손을 내밀면 꼬이던 일도 풀리고, 정치적 해석에만 매달리면 풀릴 일도 자꾸 꼬인다.

송한수 국제부 차장급 onekor@seoul.co.kr
2008-05-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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