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시간/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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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기자
수정 2008-03-28 00:00
입력 2008-03-28 00:00
한국 근현대사와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일제강점기 러시아에까지 흘러 들어간 조선인들은 일본의 시베리아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내전 초기부터 볼셰비키 편에서 반혁명에 맞서 싸웠다.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은 볼셰비키 당원이었고, 레닌에게 받은 권총을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1980년대 젊은이들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는 이론적 틀로서 러시아혁명을 숨어서 공부했다.

인연의 깊이에 비해 러시아혁명은 우리에게 오랜 기간 금기어였다. 특히 볼셰비키 ‘10월 혁명’에 초점을 맞춘 국내 연구서는 번역서조차 흔치 않았다. 근래에 번역된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과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가 명저로 꼽히나, 전자는 혁명의 현장을 기록한 저널리스트의 르포르타주 성격이, 후자는 혁명 주체가 쓴 혁명옹호 성격이 강한 글로 엄정한 학술서와는 거리가 있다.

‘혁명의 시간’(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류한수 옮김, 교양인 펴냄)은 박진감 넘치는 르포 형식을 띠면서도 객관적 사료에 기반한 학술서란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미국 인디애나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알렉산더 라비노비치가 냉전의 절정기인 1976년에 쓴 이 책은 ‘10월 혁명’을 ‘볼셰비키로 대표되는 극소수 무자비한 혁명가들의 권력 탈취 쿠데타’로 규정해온 서구 역사학계의 통설을 뒤집는 대담한 주장을 담고 있다.

저자는 혁명의 성공요인을 대중의 요구를 민감하게 포착한 볼셰비키의 현실 인식과 토론과 논쟁이 거침없이 이뤄진 볼셰비키 내부의 민주적 논의구조에서 찾는다. 이는 볼셰비키 집권요인을 당의 권위적 위계에서 찾는 서구 학계와 레닌의 탁월한 지도력을 강조하는 구 소련의 관점을 모두 뒤집는 해석이다.

볼셰비키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러시아인 집안 출신인 저자는 혁명 당시의 신문기사와 관련 문서, 회고록 등 1차 사료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10월 혁명’의 성공 요인을 재규명했다. 그의 학설은 이후 서구 학계가 러시아 혁명을 재평가하게 만든 계기가 됐고,70년대 보수적 역사해석에 반발해 등장한 수정주의적 관점을 형성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구 소련 비밀문서 해제 후 수정주의가 도전받고 있는 지금도 저자는 “새로운 자료가 내 분석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지만 결론까지 바꾸지는 못했다.”고 주장한다.2만 9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2008-03-2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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