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베이징 올림픽과 ‘성당(盛唐)의 꿈’/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연극인
수정 2008-03-07 00:00
입력 2008-03-07 00:00
연극인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토착민인 푸르족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으로 20여만명이 학살되고 난민 250만명이 발생했는데도 수단의 석유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학살을 중단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반인권적인 중국 정부가 개최하는 올림픽에 협조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로 사퇴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의 세계적 감독이며 베이징올림픽 개막행사의 예술감독인 장이머우는 당나라의 수도이던 시안을 방문한 자리에서 “성당(盛唐) 문화는 중화 문화의 최고봉이다. 성당은 군사적으로도 세계 최고였다. 곧 중화의 문명이 성당처럼 불끈 일어나 세계인의 긍지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이 자국의 문화와 국력을 전세계인들에게 자랑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당국은 개막식 주제를 특급비밀로 분류해 놓고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으나 장이머우의 발언이나 여러 정보들을 종합해 볼 때 ‘성당시대의 재현’이 거의 확실한 듯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라는 당을 개막식에서 부각시키려는 것은 또다시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해 보겠다는 의지의 문화적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개막공연에서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의 예술도 웅장하게 선보일 것이라고 전해진다.56개 소수민족의 예술을 통일적으로 집대성함으로써 후진타오 주석이 주창해 온 ‘조화(和諧·화해)사회’의 꿈을 전세계에 알리겠다는 전략일 것이다.
이런 개막식의 주제들은 베이징올림픽의 3대 테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3대 테마는 첫째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둘째 ‘녹색 올림픽, 과학기술 올림픽, 인문 올림픽’, 셋째 ‘조화’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정황들을 살펴볼 때 1970년대 말 이후 중국의 대외정책과 경제정책을 대표하는 용어이던 ‘도광양회(韜光養晦)’와 ‘흑묘백묘(黑猫白描)’는 이미 용도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인민이 잘살 수만 있다면 외국기업이든 환경오염 유발업종이든 가리지 않겠다던 정책이 몇년 전부터는 첨단산업과 친환경산업만 받아들이겠다는 ‘녹묘(綠猫)’ 정책으로 바뀌었다.
또 최근 들어 공식·비공식 행사에서 중화민족 부흥과 강대국 건설이 주창되고, 중앙텔레비전이 강대국 흥망사인 ‘대국굴기(大國屈起)’란 프로그램을 만들고, 동북공정을 비롯한 여러 공정들을 활발하게 진행해 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의 신중함은 벗어던진 지 오래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중화권 내 소수민족이나 주변국들을 ‘조화’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통일하고, 미국과 경쟁하는 세계적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올림픽이란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감독과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감독이 각기 반대의 입장에서 대응하는 것을 우리는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우리에게 중국이란 나라는, 그리고 베이징올림픽은, 메달 획득과 함께 풀기 어려운 여러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 과제에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장이머우의 화려하고 장엄한 연출로 펼쳐질 56개의 소수민족 공연에서,‘조선족’의 춤과 노래가 중화민족의 ‘거대하고 조화로운 세계’에 행복하게 편입되는 광경을 황홀하게 감상할지도 모른다.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연극인
2008-03-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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