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욱 월드포커스] 북한 핵문제의 전략적 모호성
수정 2008-02-20 00:00
입력 2008-02-20 00:00
미국 상원 청문회뿐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오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극단적으로는 오해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치와 다른 것은 외교에서는 오해를 전략적 애매성이라는 근사한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이것이 통용된다는 점이다.
국가들 간의 협상에서는 완벽한 합의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 차이를 적당히 덮어두는 전략적 모호성을 발휘해서 합의에 도달하는 기술이 바로 외교이다. 그래서 전략적 모호성을 잘 이용할수록 유능한 외교관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외교와 전략적 모호성은 동전의 양면 같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전략적 모호성이 국가 간의 중대한 분쟁으로 발전된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이익이 될 때에는 덮어두었던 모호한 부분이 나중에 상황이 바뀌면서 분쟁의 불씨로 불거져 나와서 급기야는 협정의 파기를 몰고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합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이 체결한 제네바 합의문만 해도 그렇다. 협상의 핵심은 북한이 특별사찰을 통해 과거의 핵 활동을 검증받는 시점을 언제로 하느냐는 것이었다. 북한은 가능하면 그 시점을 미루려 했고 미국은 반대로 조금이라도 앞당기려 했었다.
결국 양측이 합의한 전략적 모호성은 경수로의 핵심 부품이 제공되는 시점이었다. 문제는 북한의 해석과 미국의 해석이 달랐다는 점이다.
북한은 핵심 부품이 도착해서 설치되는 시점에 특별사찰을 받겠다고 했고 미국은 핵심 부품이 도착하기 전에 사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차이점을 좁히지 못해 결국 제네바 합의는 파기되고 말았고 제2차 핵 위기가 일어났었다.
어떻게 보면 북한은 핵시설의 가동만 중지하면 특별사찰을 받지 않아도 북한이 지켜야 할 제네바 합의의 의무는 사실상 다하는 것이라고 오해했는지 모른다. 후일 북한의 언행을 보면 그런 오해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북한의 오해에 대해 미국이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그런 오해를 일으킬 만한 일들이 협상과정에서 있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전략적 모호성이란 게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그동안 잘나가던 북한 핵문제 해결이 최근에 다시 꼬이고 있다. 북한이 보유한 핵시설의 신고를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표현부터 다르다. 미국은 북한이 “완전하고 성실한 신고를 약속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북한은 그냥 신고만 약속했다는 입장이다.
또한 북한은 이미 작년에 신고를 끝냈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아직 그런 신고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북한은 핵시설의 폐쇄와 불능화만 철저히 이행하면 신고는 적당히 해도 미국이 자신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빼주고 적성국 교역국 적용에서도 졸업시켜서 관계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오해했는지 모른다.
이제 며칠 후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과거에도 핵문제가 불거져서 새 정부의 발목을 잡았던 일이 있다. 왜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해야 하는지 답답하다. 새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기대한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2008-02-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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