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영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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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1-26 00:00
입력 2008-01-26 00:00
“마음속의 상처를 ‘눈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울고 싶지만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딱 한방울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고, 눈물을 쏟아 잘못을 용서받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눈물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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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작가
천운영 작가
작가 천운영(37)씨가 ‘눈물’을 들고 나왔다. 그가 내놓은 세번째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창비 펴냄)은 표제작을 비롯해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알리의 줄넘기’‘노래하는 꽃마차’ 등 상처와 눈물에 관해 이야기한 8편의 단편을 담았다. 소설집 ‘바늘’‘명랑’,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에 이어 4년만이다.

“이번 소설집은 상처와 그 치유의 방법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상처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즉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그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바늘’에서는 미와 추의 경계, 그와 연결된 강함과 약함의 경계를 다뤘고 ‘명랑’에서는 삶과 죽음 경계를 이야기했다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는 ‘눈물’로 상처를 치유하는 여러 가능성을 타진해봤다고 고백한다.

표제작 ‘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유약하고 보호받기 위한 눈물 대신 오줌을 싸는 여자가 주인공. 그녀가 일곱살 때 미숙아로 태어난 남동생은 인큐베이터 사용료가 없어 단 하루만 살고 죽었다. 그녀가 홍역을 앓던 어느날 남동생이 나타나 20년 동안 ‘단 한번도 울지 않은 영원한 일곱살 소년’의 모습으로 곁에 머문다. 남동생의 잔상이 남아 있는 그녀도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눈물은 감정의 늪이다. 유약한 인간들만이 자기가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눈물은 굴복의 다른 이름이다. 아픔과 고통에 대한, 조롱과 비난에 대한, 슬픔과 고독에 대한 굴복의 징표다. 따라서 나는 눈물 대신 오줌을 싼다.” 주인공이 눈물을 거부하고 대신 오줌을 싸는 방법으로 작가는 새로운 눈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중년 사진사의 이야기를 그려냈고,‘알리의 줄넘기’는 씩씩한 혼혈소녀를 등장시켜 다문화 가족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뤘다.‘내가 데려다줄게’는 제자와의 성 추문으로 도망친 사내의 이야기이며,‘노래하는 꽃마차’는 상처로 꽃을 피우는 여자가 결국 상처와 그 상처를 치유하는 통과의례로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다. “등단 후 쉼 없이 달려왔어요. 첫 장편 ‘잘 가라, 서커스’를 쓰고 나서는 온 몸이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장편을 쓰다 막상 단편을 쓰려니까 호흡 조절도 잘 안 되고요. 그러다 보니 소설 쓰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한 1년 아무 생각 없이 푹 쉬었죠. 이때 나대로 그냥 편하게 가보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열리게 되고 글도 쓰게 됐죠.” “육식적인 서사·상상력을 뛰어넘고 싶은데 갈피를 못잡아 힘들었다.”는 작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마음을 열자 글도 쉽게 써졌다고 말한다.

이사벨 아옌데, 나딘 고디머, 가브리엘 마르케스 등 서사가 강하고 마술적 리얼리즘이 강하게 녹아 있는 작가가 좋다는 그는 요즘 두번째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란다.“예전부터 관심 있던 게이들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뤄 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대개 게이 하면 성 정체성 측면에서만 다뤄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냥 게이들이 살아가는, 게이들의 삶 자체를 그리고 싶어요.”

등장 인물 중 한 사람은 박제사라고 귀띔하는 그는 얼마 전에는 청설모 박제 과정을 지켜봤다.“내가 취재하는 것은 결코 소재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소설을 쓰기 위한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취재라고 할까요.” 소설의 모티프로 등장했던 문신(‘바늘’), 마장동 우시장(‘숨’) 등에 이어 그의 ‘취재적 글쓰기’가 은근히 기다려진다.9800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2008-01-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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