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美견제로 加 원자로 도입 무산 위기도
김미경 기자
수정 2008-01-15 00:00
입력 2008-01-15 00:00
한국, 美에 김형욱 신병인도 요구 등 조직적 대응 77년 외교문서 공개
외교통상부는 15일 이런 내용들이 포함된 생산 또는 접수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 17만여 쪽을 공개한다.
이들 중 ‘캐나다 원자로형 도입 차관(1975∼1977년)’ 관련 외교문서에 따르면 한국과 캐나다 양국 정부는 협상 체결시한이던 1976년 1월말 직전에 협상 결렬의 위기까지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당시 한국 정부가 프랑스로부터 핵연료 재처리시설을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미국이 반대했고 이에 캐나다 정부가 동조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양국간 협상은 결국 한국 정부가 재처리시설의 도입을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같은 달 26일 서울에서 체결됐다.
또 박정희 정권에서 최장수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다 미국으로 망명한 김형욱씨가 1977년 김대중 납치사건 등 박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자 당시 한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김씨의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고소를 제기하는 등 조직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1977년 6월23일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등은 총리공관에서 김형욱 사건에 대한 대책을 집중 논의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재미교포들에게 김형욱을 상대로 민형사 고소를 제기토록 하자고 결론지었다. 또 외무부를 통해 미 행정부에 김형욱의 미국 망명이 설립되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조속한 신병인도를 요구하자고 했다.
이와 함께 각 일간지에 사설과 기획기사, 사회단체 명의의 규탄성명 등을 게재토록 하는 등 국내 언론을 최대한 활용키로 했다. 기사는 주로 김형욱의 인격을 비하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싣도록 하고 외국과의 정치자금 및 스위스은행 거래설에 대한 외신들 보도내용은 원문대로 국내언론에 보도하도록 했다.
이밖에 북한이 1977년 6월21일 200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하고 일본이 어로자원 확보 및 민간선박 보호를 위해 북·일간 접촉을 시도하자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한 자제를 일본측에 요청하는 등 북·일 교섭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공개되는 문서들은 외교사료관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마이크로 필름으로 열람할 수 있으며 문서 목록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www.diplomaticarchives.go.kr)와 국내 주요 도서관 등에 배포한 책자를 통해서 볼 수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2008-01-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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