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케네스 벤디너 지음
황수정 기자
수정 2007-12-14 00:00
입력 2007-12-14 00:00
‘파리스의 심판’서 사과는 무슨 상징?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대학의 예술사 교수인 지은이는 눈 밝은 풍속연구가이기도 하다.15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포스터모더니즘 시대까지를 범위로, 음식이 등장하는 회화작품들을 빌려 음식의 문화사를 되짚었다. 이름하여 ‘음식회화’라는 장르를 독자적으로 규정한 지은이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음식이나 술, 음식을 먹는 레스토랑과 술집, 카페 등을 그린 ‘음식회화’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작업이 곧 서양음식문화사를 이해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음식의 종교·의학적 상징을 귀띔
흥미로운 책읽기를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음식과 예술의 전반적인 관계를 짧게 언급한 뒤 음식재료를 사고 팔고(1장), 요리해서(2장), 식탁에 올려 즐기는(3장) 과정을 단계적으로 추적한다. 시대를 달리한 서구의 다양한 미술작품들을 텍스트로 삼은 건 물론이다. 우선 음식이 종교·의학적으로 지니는 상징을 귀띔한다. 예컨대 그리스 신화의 영웅 파리스가 비너스에게 사과를 건네는 그림 ‘파리스의 심판’에 등장하는 과일은 에로티시즘과 이교도적 매력의 상징물이다. 그런가 하면 ‘최후의 만찬’ 같은 작품으로는 음식회화의 종교적 은유를 짚어보인다. 음식을 먹는 그림 속 행위 자체가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신이 일체를 이루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회화작품들에서 음식의 문화사를 추출해내는 책의 맛깔난 작법은 2장에서부터 진면목을 보인다.19세기 말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책은 호롱불 아래에서 감자를 나눠먹는 네덜란드 농민들의 남루한 삶을 읽어낸다. 그림 속 음식으로 물질적 만족감을 드러내던 표현법은 팝아트 시대로 접어들면서 태도가 달라진다. 앤디 워홀의 캠벨 통조림 깡통 그림 ‘200개의 수프 통조림’,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만화에서 착안한 ‘주방스토브’ 등이 보여주었듯 팝아트 이후로 등장한 음식회화는 전래의 위무적 기능과는 동떨어진 것들이다.
●포크는 언제부터 사용?
대가들의 음식그림을 예술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이 책의 또다른 장기이다. 그림에 나오는 잔치, 죽은 짐승, 과일, 식기 등의 근저에 놓인 무의식에 초점을 맞춘 시각이 새롭다. 들라크루아의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의 경우. 화폭 중앙에 사냥물이 날것 상태로 쌓인 그림에 생뚱맞게 조리된 바닷가재가 놓였다. 이를 책은 “시대를 역행하는 당대 보수파 정치인들의 이념을 풍자하는 의미”로 해석한다. 인문과 예술의 두 세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저자의 지적 편력이 화려하다. 미술해설서인양 갈피갈피에 펼쳐진 천연색 도판에 미감이 자극되는 ‘덤’도 기대 이상이다.
레스토랑의 시초는? 서구 식탁에서 처음 포크가 사용된 시기는? 길거리 가게 간판이, 식당 메뉴판이 등장한 때는? 음식회화가 사회상을 투사한 시대의 창이었다는 논제를 풀어가는 사이사이로 무릎을 치게 하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풍성하다.1만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7-12-14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