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광주 모독’은 끝나지 않았다/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수정 2007-08-20 00:00
입력 2007-08-20 00:00
모두들 겁에 질렸다. 그리고 나는 내가 본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내 방에까지 소식을 전한 것은 어느 죽어가던 억울한 영혼들이었을까? 군홧발에 밟혀 짓이겨진 어떤 육체가 그 비명을, 한 무능력한 시인의 영혼에게 전달한 것일까?
광주는 내 시의 원체험 같은 것이다. 내가 본 환상이 광주에 관한 소문을 듣기 전인지 후인지도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전이라고 내 기억은 말하지만, 어쩌면 후인지도 모른다. 의식에 분명하게 남은 것은, 그 환상을 본 것이 꿈에서가 아니라, 의식이 뚜렷한 상태에서였다는 것, 그리고 광주에 관해 접한 모든 공식정보가 거짓이라는 것을 내가 매우 육체적인 방식으로 확신했다는 것, 그리고 그 확신이 개인적으로는 그 환상을 매개로 했다는 것, 그뿐이다.
무려 27년이 지나서야 이제 겨우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만들어졌다.‘화려한 휴가’에서 주인공인 택시기사(김상경 분)는 단지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죽어 간다.
잘 연출된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해한다. 그 장면이 과장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런저런 정치적 부비트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겨우 감독이 건져낸 비정치적인 대사 한마디, 그 한마디에 결국 영화의 모든 메시지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 집중이 그 장면을 미적으로 불균형하게 과장된 것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사실, 나는 좀 더 본격적인 진실 접근을 원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폭력 장면이 실제로 광주에서 저질러진 폭력에 비해 지극히 순화된 양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그 일을 저지르고 권력을 잡은 자가 지금도 버젓이 살아 영화를 누리고, 그 세력의 당사자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막강한 파워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광주의 의미를 폄하하는 논리가 얼마나 가짜 논리인지 하는 것들을 다루어주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려한 휴가’를 만들어 준 분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한다. 광주에서 ‘폭도’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이 영화가 많이 진혼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화려한 휴가´가 택한 접근 방식 덕택에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가 이 참혹한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진실에 접근하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 그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최상의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영화를 보면서 결국 나는 입술을 깨물며 통곡하고 말았다. 참을 수 없는 회한과 고통이 핏줄을 떨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체 어디에?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피들은 대지 위에서 울부짖는데, 아직도 그 사건으로 권력을 찬탈한 세력은 막강하기 짝이 없다. 광주의 모독은 끝나지 않았다. 광주는 지금도 모독당하고 있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2007-08-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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