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소설집 산을 내려가는 법
이문영 기자
수정 2007-08-20 00:00
입력 2007-08-20 00:00
사북 아이들이 물 색깔을 까맣게 칠했던 지장천이 맑아졌고, 광부의 ‘밥’이고 ‘삶의 끈’이던 ‘오염물질’ 탄재가 없어졌다. 쾌적해진 사북의 ‘안경다리’(사북항쟁 당시 경찰과 광부들의 대치선이던 쌍굴다리)를 오르내리는 건 ‘한 판 벌이러 온’ 외지인들의 고급 승용차뿐이다. 압축 자본주의의 영광을 떠받친 이면의 속살, 사북의 탄재 걷힌 맑은 하늘 햇빛 줄기가 칼날같이 아프다.
●르포형 ‘사북장 시리즈’
김남일이 사북에 처음 발을 디딘 건 사북항쟁을 거친 1980년대 중반이었다. 청탁 받은 르포 원고를 쓰기 위해서였다. 최근 10년 만에 낸 소설집(‘산을 내려가는 법’, 실천문학사)에 실린 단편 ‘사북장 여관’에서, 그는 당시를 이렇게 적었다.
“나이 들어 진폐가 드러난 갱부는 막장 안보다 나을 게 없는 판잣집 한쪽 골방에서 하루종일 밭은 기침을 토해냈고, 아직 병들지 않은 젊은 갱부는 밤마다 막소주에 삼겹살로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냈다.(…) 그때도 사북에는 오직 생의 남루만이 있었다. 타지에서 들어온 활동가들은 그 생의 남루를 벗겨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결과는 늘 허망했다.”
사북의 남루함을 인식할 때마다 자신의 남루함까지 확인해야 했던 소설가.2003년 다시 밟은 사북에서 그의 마음은 이미 폐허였다. 동원탄좌 폐광을 목전에 두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사북처럼, 김남일도 헉헉대며 죽음 같은 글을 썼다. 그 자신 ‘사북장 시리즈’라 표현하는 ‘사북장 여관’,‘산을 내려가는 법’,‘노을을 위하여’ 세 편의 단편이다.
●사랑과 희망을 잃고 쓰다
그 무렵, 김남일은 사랑과 희망을 한꺼번에 잃었다. 마흔 넘어 찾아온 목숨 같은 사랑을 잃었고,80년대 이후 자신을 지탱해온 희망을 잃었다. 사랑의 고통이 너무 커 지리산에 틀어박혀 ‘산짐승’처럼 살았고,‘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던 시대’가 지나자 과거 노동·민중문학의 기수는 시대의 무기였던 문학을 내려놓고 절망했다.“늘 자살을 생각하며 살았던 시절, 그때야말로 내 삶의 바닥을 본 것 같다.”고 김남일은 회고했다.‘사북장 시리즈’는 그의 이전 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절망, 환멸, 자기비판이 총체화된 작품이다.“나 자신을 ‘단기적 낙관주의자’이자 ‘장기적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해왔는데, 희망을 갖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죽을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 속엔 작가 자신의 개인사가 꾸며지지 않은 채 섞여 들었다. 그는 “나는 작가와 작품이 너무 밀접한 사람”이라 했고,“그건 소설가로서 치명타”라고 자평했다.“네 소설은 너무 착하다.”는 선배 문인의 이야기가 치욕스러웠지만, 그는 가장 아팠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쓰며 울었고 스스로를 치유했다. 그래서다.‘사북장 여관’은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애착을 갖는 단편이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난 한 번도 즐겁게 글을 쓴 적이 없었어요. 시대와 대결하는 의무감으로 문학을 했으니까요. 반면 ‘사북장 여관’은 철저하게 나 자신에게 몰입한 글입니다. 내 문학의 일대 전환점이 됐습니다. 나 자신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절망 속에서 읽는 역설적 희망
처절하게 절망하며 쓴 ‘사북장 시리즈’에서 역설적인 희망을 읽게 되는 것도 그가 가장 밑바닥의 고통, 더 떨어질 곳 없어 위를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갔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 신축단지 곁 도로를 따라가던 내 눈길은 마침내 주변의 어둠보다도 더 까만 터널 입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게 길이었다. 유일한.”(‘사북장 여관’ 마지막 문장)
희망이나 희망인지 알 수 없을 만큼의 희망, 희망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길이 없기에 희망이라고 믿고 싶은, 그런 희망이다.
“앞이 안 보이고 깜깜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그래서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그게 최소한의 희망 아닐까요?”
표제작 ‘산을 내려가는 법’이 말하는 바도 동일하다. 희망을 찾으려 안간힘 쓰며 오른 산꼭대기에서조차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절망 같은 일상 속으로 내려가는 법을 소설은 상징한다.“힘들어도 잘 내려가자, 현실이 환멸스러워도 너무 좌절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김남일은 설명했다. 연대가 사라진 시대, 팔레스타인 작가들과의 작은 연대를 그린 소설 ‘노을을 위하여’의 주제이기도 하다.
사북에서도 노을은 아름답다.‘산업전사’란 칭송이 사탕발림임을 알았을 때 가슴에 남은 유일한 훈장이 숨구멍 조이는 진폐증뿐이었던 ‘과거 광부들’.‘탄광도시 사북’의 주인이었으나 ‘카지노도시 사북’에선 강원랜드 진입로 청소를 하며 밥을 벌어야 하는 광부들.2억 년은 지나야 만들어지는 석탄을 캐다 불과 수 년의 카지노 불빛에 밀려난 광부들…. 오늘도 그들은 타박타박 노을 속을 걸어간다. 노을이 질 무렵 사북에서, 김남일은 말했다.“기억이 때론 징그러워요. 나이가 든 지금도 젊었을 때 본 사북을 잊지 못해요. 변해가는 나 자신과 변해가는 사북이 슬프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만은 없어요.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요.”
정선 글 사진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2007-08-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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