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의 신화/사토 다쿠미 지음
문화전문 기자
수정 2007-08-10 00:00
입력 2007-08-10 00:00
‘8월15일의 신화’(사토 다쿠미 지음, 원용진·오카모토 마사이 옮김, 궁리 펴냄)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현재 8월15일을 종전일로 하는 나라는 일본과 광복절로 기념하는 한국, 그리고 해방기념일이라고 부르는 북한뿐이라고 한다.‘8월15일 종전’ 논란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은이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에서 1960년 태어난 미디어역사학자이다. 현재 교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8월15일의 모습을 담았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사진 몇장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항복방송 다음날인 8월16일 ‘홋카이도신문’은 ‘천황의 조서발표 방송을 듣는 직원들’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을 실었다. 하지만 이 사진은 항복방송이 아닌 1941년 12월8일 미국과의 전쟁 개시를 알리는 방송을 듣던 시민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홋카이도신문’은 1995년 8월15일자에 ‘종전 특집’으로 ‘죽음으로 보답하지 못한다-천황 목소리에 무릎 꿇는 아이들 무리’라는 제목으로 항복방송에 엎드리거나 서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는 아이들의 사진을 실었다. 하지만 사진을 본 당사자들이 “꾸며진 것”이라고 증언했다.“그날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의 의미는 몰랐다. 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도 모른 채 신문사 사람이 시키는 대로 했다. 종전기념일에 내 사진이 실릴 때마다 도망가고 싶었다.”고 했다.
두 사진은 역사책에도 실릴 만큼 8월15일의 역사적 순간을 담은 사진으로 일본에서는 유명세를 떨쳤다.
지은이는 8월만 되면 종전 관련 메뉴로 넘치는 일본 신문의 이른바 ‘8월 저널리즘’이 정착한 시점은 미군의 점령이 끝나고 ‘9·2 항복기념일’이 망각된 1955년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일본 언론은 종전 10주년을 기념한 이벤트를 펼치는데 ‘9월2일’은 사라지고 ‘8월15일’만 언급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 이유가 ‘일본인에게 8월15일 종전기념일은 좌우의 이데올로기가 절충할 수 있는 편한 균형점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1955년은 사회당의 좌우파벌이 통합했고, 민주당과 자유당이 통합하여 자민당이 성립되었다. 미소 냉전 시스템을 투영시킨 형태의 양당구도에서 우파는 ‘평화의 날’이 시작되었다며 일본의 원폭 피해를 강조했고, 좌파는 ‘천황’에서 민중으로 정치권력이 넘어온 ‘혁명의 날’로 보고 싶어했다. 이렇게 8월15일에 부여하는 의미는 달랐지만 이 날을 종전일로 보고자하는 데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언론매체가 소재를 발굴하고 재편성하여 국민들의 뇌리 속에 굳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18년이나 지난 1963년 5월14일 에케다 하야토 내각은 ‘전국 전몰자 추도식 실시요항’을 의결하여 8월15일에 종전기념일로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8월15일은 한국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천황’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하는 방송을 했다고 항복 시점으로 보았지만 지은이의 기준으로는 타당성이 없다.
최근 국내에서 8월15일을 ‘정부수립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8월15일의 신화’는 우리 학계에도 커다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1만 3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2007-08-1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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