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원회관서 121호 묻는 게 안부 인사였죠”
윤설영 기자
수정 2007-08-08 00:00
입력 2007-08-08 00:00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그는 1992년 미국 유학 도중 한국에서 우연히 정신대 할머니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참 안됐다.”는 생각은 했지만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뛰어든 것은 1998년 미국 의회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의 사진전을 개최할 때부터다. 당시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에서 총무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대표가 되어 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동안 위안부 결의안은 세 차례 의회에 제출됐으나 두 번은 상정도 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레인 에번스 민주당 의원 등 두 명이 공동 발의한 결의안이 처음으로 상정됐으나 회기가 종료되면서 본회의는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올초 다시 결의안을 준비하면서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고 한다. 특히 올해는 민주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봤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이나 워싱턴포스트 광고가 역풍으로 작용하면서 점점 승리의 여신이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했다.
뉴욕팀, 로스앤젤레스팀, 워싱턴팀으로 나눠 의원들을 공략했다. 학교 일도 뒤로한 채 매일같이 의원회관을 찾아다니면서 위안부 결의안 121호의 지지를 호소했다. 의원회관에서는 그를 만나면 “원투원(121)?” 하고 묻는 것이 안부인사가 될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그와 동료들이 받아낸 서명이 60명 가까이 된다. 서명자 168명 중 3분의1을 받아낸 셈이다.
그는 “‘당장 그만두라.’는 협박 메일과 전화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 가운데서도 “혼자 잘난 척하느냐.”면서 못마땅해하는 눈길도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함께 뛰어준 한인유권자센터의 김동석 소장, 캘리포니아 121 추진 연대 윤명현 신부 등이 큰 힘이 됐다.
그는 앞으로도 역사 바로잡기를 위한 홍보교육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인은 물론 1.5세대 한국인들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70여개 대학을 다니면서 위안부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2007-08-0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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