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한국인 1명 피살] 탈레반 ‘포로 석방’ 고수… 협상 난항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이 발생한 지 7일 만인 25일 한국 및 아프간 정부측과 납치단체인 탈레반측이 하루 종일 밀고 당기는 ‘벼랑끝 협상’을 진행했다. 결국 피랍자 8명이 풀려나게 됐다는 ‘낭보’가 먼저 일부 외신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곧이어 탈레반측이 한국인 남성 1명을 살해했다는 슬픈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전날 탈레반측이 죄수 8명과 피랍자 8명을 맞교환하자고 밝힘에 따라 이날 피랍자들에 대한 조기 석방 기대감이 커졌다. 맞교환설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정부는 납치된 23명 한국인을 모두 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선별 석방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만큼 협상을 본격화해 피랍자 전부를 석방시키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기대감과 달리 오후 4시30분쯤 탈레반측이 “(협상)시한은 이미 만료됐다.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오늘 오후 2시(현지시간·한국시간 6시30분)까지 한국인 인질 중 일부를 죽일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협상 분위기는 최악의 상황으로 돌변했다.
오후 7시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측에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 수감 중인 탈레반 요원 8명의 석방을 약속하면서 죄수와 인질 교환이 준비되고 있다는 교도통신 보도가 나오면서 탈레반이 살해 협박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지면서 안도감이 감돌았다. 정부가 인질 석방을 위해 ‘모든 카드’를 던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정부는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외신보도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신중함을 보였다. 이어 오후 9시쯤 피랍 한국인 8명이 곧 석방된다는 보도에 이어 남성 1명이 살해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측은 “확인 중”이라고만 밝히며 입장 발표를 유보했다. 이어 외신을 통해 “1명은 사망했으나 22명은 억류 중”이라는 엇갈린 소식이 전해졌지만 정부측은 이에 대해서도 확인하지 못했다.
정부는 겉으로는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물밑으로는 계속되는 급반전 상황에서 사실 여부를 파악하느라 분주히 움직였으나 오후 10시30분쯤 예정됐던 조희용 외교부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도 지연되는 사태를 빚었다.
정부 당국자는 앞서 이날 탈레반측이 요구 사항을 한국 및 아프간 정부측에 제시했다며, 본격적인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탈레반측의 협상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아프간 포로와 한국인 인질 8명씩 맞교환 ▲인질 직접 전화·대면에 10만달러 제공 ▲1인당 석방 대가로 거액의 돈 지불 ▲요새 이동 등 안전 확보 등에 대해 협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부측은 몸값 등 경제적 보상 조치에 매달린 반면, 탈레반측은 죄수·인질 교환을 주장하면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면서 8명은 풀려났으나 죄수 석방은 합의되지 못해 인질 1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협상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을 뿐더러 오후 늦게 인질 8명 석방 및 1명 살해설로 일대 혼란이 이는데도 침묵으로 일관, 정보력 부재에 대한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 소식통은 “거액의 몸값에 죄수 석방까지 상당한 조건을 제시했으나 협상 조건에 대한 탈레반 내부의 이견도 있었던 것 같고, 요구 사항을 더 높이려는 전략에 따라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을 보인다.”며 “탈레반측이 추가 협상을 제시한 만큼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으로 보여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결국 피랍자 23명 전원을 한꺼번에 조속히 구출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했던 한국·아프간 정부측은 8명 구출여부를 뒤로 하더라도 이같은 정보력 부재속에 피말리는 협상에 다시 나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편 당초 청와대는 이날 저녁 “(한국시간으로)오후 8시까지 납치단체에서 모종의 액션이 나올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다 인질 8명의 석방 소식이 전해지자 “바로 이것이다. 이제 협상의 물꼬가 트였다.”고 반색했다. 사전에 납치단체측과 우리 정부 사이에 ‘8명 석방’에 관한 협상이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곧이어 ‘1명 살해’가능성이 높아지자 청와대 관계자는 “한번 두고 보자. 사실이라면 ‘8명 석방’보다는 ‘1명 살해’가 훨씬 크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고 당혹해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인질 석방의 대가로 현금을 직접 주고 받는 것은 우리 정부의 위상으로나 탈레반의 명분으로나 맞지 않다.”면서 “부족의 의료·보건시설 등을 우리가 지원하는 형식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