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 “전투병 대신 의료·재건 부대 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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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린 기자
수정 2007-07-12 00:00
입력 2007-07-12 00:00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이 중심이다.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나 거기 서 있다’ 중에서)

노동자의 아픔을 대변해온 박노해(50) 시인이 레바논의 고통을 읊었다. 레바논 전쟁 1주년을 하루 앞둔 10일 오전 박 시인은 기자회견을 열고 전투병 파병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동명부대 300여명의 파병이 일주일 남은 시점이다.

“파병지 수르는 결코 안전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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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
박노해 시인
시인은 “전투병 대신 의료·재건 부대를 보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레바논을 찾은 그는 “비극적인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오랜 묵언을 깨고 이 자리에 나왔다.”면서 “파병지 수르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박 시인은 현재 레바논에는 무장세력이 속속 몰려들고 있으며 9월에 있을 대통령선거로 첨예한 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우리 정부는 실정을 모르거나 위험 요인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책임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 현지 민심을 왜곡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레바논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제게 물었습니다.‘이스라엘이 미국을 등에 업고 우리를 학살할 때 코리아는 침묵으로 동조하지 않았느냐.’고요. 저는 한국에 차갑게 등을 돌린 중동의 변화가 무섭게만 느껴졌습니다.”

박씨가 흑백 카메라로 담아온 사진들은 상처난 도시와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생생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는 말하는 중간중간 잔기침을 뱉어냈다.“평생 마실 잿더미를 다 마셨는데 시간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았네요.”

박씨는 국내 문제에서 해외 분쟁 문제로 고개를 돌린 이유에 대해 “자기 자신이나 나라에 대한 관심은 타고나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은 배워야 한다.”면서 “감옥에 있을 때 우리가 세계를 너무 모르고 섬에 갇힌 채 운동을 해왔다는 성찰이 있었다.”고 털어 놨다. 이왕 죽었다 살아난 목숨이니 5년,10년 후를 바라보고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분쟁 지역을 돌며 30,40대의 저항 리더들을 많이 만난 것도 그 때문이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박씨를 부르는 손짓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제가 누구보다 고생을 덜 했다고 할 수 있나요?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그는 7년쯤 두문불출했더니 이제 자신을 알아 보는 사람이 없다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기자회견장에는 전 한국 중동학회 회장인 건국대 최창모(52) 교수와 요르단 대학의 라자이 알 칸지(58) 교수도 참석해 지지를 보냈다.

최 교수는 ““오늘날 가장 아픈 세계의 중심이 한반도와 레바논인 것 같다.”면서 “외세의 침략 전쟁과 오랜 내전 속에서 막 스스로 일어나려는 레바논 사람들에게 외부의 개입은 모욕감과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칸지 교수는 “남부 레바논은 이스라엘에 오래 점령을 당해 위험한 곳이며 바로 그 점이 헤즈볼라가 저항운동을 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회견을 마친 박씨는 비 내리는 광화문 거리에서 오전 12시 50분부터 1시간 가량 1인 시위를 벌였다.

글 사진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7-07-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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