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문경 석달사건서 살아남은 채의진씨
이문영 기자
수정 2007-06-30 00:00
입력 2007-06-30 00:00
문경 석달사건 생존자 채의진(72)씨의 떨리는 목소리는 크고 높았다.“지난 세월 가슴에 쌓인 한이 비로소 씻겨나갔다.”고 했고,“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통곡소리로부터 조금은 놓여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진실화해위 “반인륜적 집단학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는 29일 “‘문경 석달 집단희생사건’에 대해 26일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경 석달사건은 19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군 석달마을에서 2사단 소속 국군 70여명이 마을 주민 86명을 집단 총살한 사건이다. 주민들이 ‘공비’에게 음식을 줬다는 ‘입증되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사망자 중 10세 이하 어린이만 22명이었다. 진실화해위는 “석달사건은 국군이 비무장 민간인인 노약자나 부녀자를 아무런 확인과정 없이 무자비하게 총살한 반인륜적인 집단학살”이라며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 ▲부상자들에 대한 의료비 및 생계비 지원 ▲유족들의 지속적 위령제 봉행을 위한 재정적·제도적 지원 등을 권고했다.
●형·사촌동생 시신에 깔려 살아
진실규명 결정엔 채의진씨의 평생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 사건 당시 13살이었던 채씨는 형과 사촌동생의 시신에 깔리는 바람에 살아남았다. 석달사건을 알려내려고 21년간의 교사생활을 그만뒀고,‘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피해자 전국유족회’를 만들어 공론화시켰다. 미국을 오가며 관련 비밀문서를 찾아 공개하기도 했다.
채씨는 “14대 국회 때부터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모르쇠로 일관해왔다.”면서 “오죽하면 청와대 앞에서 분신자살할 생각까지 했겠나.”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제라도 국가를 믿고 싶다”
채씨는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것도 통탄할 노릇이지만, 사망원인을 ‘공비에 의한 총살’로 호적에 기재해 진실을 왜곡한 정권들의 행태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회고했다. 채씨는 “이제라도 국가를 믿고 싶다.”면서 “국가는 피해자 배상과 위령사업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석달사건에 관한 개별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배상 규정을 명시하지 않는 이상 현행법으로 피해자 배상은 불가능하다. 채씨는 “2005년 경북 도의원 56명 전원의 서명으로 배상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17대 국회에서 통과되긴 힘들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2007-06-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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