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연좌제의 망령을 경계하며…/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수정 2007-06-05 00:00
입력 2007-06-05 00:00
얼마 전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연좌제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정신질환이 있는 교포 한 사람이 벌인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하고 언론도 뭔가 사과해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한국의 대미 수출에 대해 염려하는 예측까지 있었다. 한국계 이민자 한 사람이 벌인 사건에 대해 전 국민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마치 전체주의 사회에 사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최근 친일행위자들의 재산에 대한 환수조치 발표가 있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친일분자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받은 토지를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60여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국가의 기강을 살리는 것은 물론, 독립 투쟁에 몸을 바친 의인들과 그 후손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후세에 교훈이 되는 조치가 되리라 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며 진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작성하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에 대한 가계도가 공개될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 감안하면 이에 대해 극도의 주의를 필요로 한다. 친일파 자손들은 그들의 조상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나이가 40세인 시민이 그의 3대 할아버지쯤 되는 사람이 친일파였다는 사실 때문에 90여년이 지난 현재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불이익을 당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근대국가가 아닐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민족정기를 중요시 여기는 모 국회의원의 아버지가 일제하에서 헌병이었다는 것이나 모 인사의 조상이 동학혁명의 원인제공자인 고부군수라는 사실이 이들을 비아냥대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좌우를 막론하고 상대방을 조상의 행적과 연루하여 공격하는 비열한 행위는 없어야 한다. 역사 바로잡기를 감정적으로 처리하면, 그 때 사용된 단죄의 칼날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고, 현재는 과거의 유령이 지배하게 될지 모른다. 대한민국에서는 조상이 누구든,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든, 집안이 아무리 가난하든, 본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사회의 최고 명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시민들은 이런 나라를 사랑할 것이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몸을 바쳐 지킬 것이다. 연좌제적 사고방식은 정부나 제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온 시민이 선진 문화인이 되어 척결해야 할 원시적 씨족사회의 잔재이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007-06-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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