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이방원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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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5-23 00:00
입력 2007-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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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전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주자 전방위 비판에 대해 “상왕(上王)이냐.”고 맞받아친 적이 있다.

며칠 전에는 “민감한 시기인 만큼 뒤에서 후원하고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범여권 통합문제에 대해 “좌우간 내가 바라는 것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대통합을 주문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조직의 대세를 거역하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대통합 수용 의사를 내비친 노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제는 “노 대통령은 더 이상 왈가왈부 않았으면 좋겠다.”고까지 나갔다. 전·현직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나서지 말아 달라는 것일 게다.

두 전·현직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민감한 사안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범여권의 제 세력들에겐 강력한 주문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두 사람의 교감설도 나왔다. 그만큼 파장은 상당했다. 당장 동교동계의 리더격인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돌아섰다.

한 전 대표는 “이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힘을 합쳐야 할 때”라며 DJ 발언에 힘을 보탰다. 대표 시절 ‘역사에서 없어질’ 열린우리당과의 당대당 통합 결사반대, 민주당 분당의 원인을 제공한 특정인사 배제 등을 주장하면서 제3지대 헤쳐 모여식 정계개편을 주장한 한 전 대표였다. 지금의 박상천 대표와 같은 입장에서 180도 확 바뀐 것이다. 민주당도 시끄럽다. 특정인사 배제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는 박상천 대표가 위기에 몰린 형국이다. 당내 소수인 대통합론자들이 한껏 박 대표를 코너에 몰아넣고 있다. 구체적인 연대 움직임까지 나타난다. 그런 가운데 DJ의 대선 후보군 면담이 이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의 ‘대세 수용’ 발언은 그 진위를 놓고도 말들이 많다. 드디어 대통합을 수용했다며 환영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비판론자들은 무슨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발언 가운데 ‘당이 절차를 밟아 규칙에 따라’라는 전제를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 이틀 후 ‘노의 남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 복귀를 전격 선언했다. 때마침 친노 진영의 리더격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설이 흘러나왔다.‘대단한 전략가’로 통하는 노 대통령의 대선 후보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돈다. 앞으로도 노 대통령은 임기말 대통령답지 않게 정치행위를 계속할 것이다. 후보군 품평은 물론이고 통합의 방향과 절차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현재로선 범여권 통합문제에 대한 전·현직 대통령의 인식은 차이가 난다. 그 차이의 진폭에 따라 정치권은 언제든지 요동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통합론과 친노세력의 독자후보론이 일전 결사를 외칠지도 모른다.

12년간 엘리제궁의 주인이었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 환경문제와 유럽문화 등의 분야에서 활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선진국 정상들은 자리에서 물러나면 환경문제나 복지향상 등 세계적 관심사에 여생을 보내는데, 우리는 물러나도 오로지 관심은 정치밖에 없는 형국이니 딱한 노릇이다.‘정치 만능주의’의 병폐는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다음 군주인 세종의 뛰어난 역량이 한껏 발휘될 수 있도록 자신의 업보를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하고, 특히 최측근 공신들조차 함께 막을 내리게 한 뒤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태종 이방원의 지혜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까.

jthan@seoul.co.kr
2007-05-2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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