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버린 혼불
임송학 기자
수정 2007-05-16 00:00
입력 2007-05-16 00:00
이 불로 12대 종부(宗婦) 박증순(93)씨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이날 화재로 본채, 사랑채, 행랑채, 중문, 삼문 등 목조 기와건물 5채 가운데 본채 84㎡가 전소돼 2900여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낸 뒤 1시간30분만에 진화됐다.
남원시 제공
목격자 박모(80·여)씨는 “갑자기 불꽃이 튀는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는데 부엌과 다른 방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보고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이 집에는 숨진 박씨 등 2명만 살고 있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박씨의 방에 설치돼 있던 변압기가 합선돼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불이 난 삭령 최씨 종가는 조선시대 남원지역 양반가의 몰락 과정과 3대째 종가를 지켜온 며느리의 애환을 그린 작가 고(故)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곳이다.1905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전통가옥으로 마을과 들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노봉마을 맨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숨진 종부 박씨는 18세에 전남 보성에서 시집와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고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둘째 딸은 국회의원을 지낸 최영희(68)씨이며 아들 강원(63)씨는 서울대병원 내과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큰딸 강희(70)씨는 교직을 정년퇴직했다.
남원의료원에서 빈소를 지키던 강희씨는 “보통 사람과는 확실히 다른 분”이라면서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편을 잃고 자식들을 키우며 종가를 지켰다.”고 말했다.
이 집안은 문과 12명과 무과 14명의 급제자를 배출해 남원의 명문가로 알려졌다. 박씨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효원아씨, 박씨의 시어머니는 율촌댁, 시할머니는 청암부인의 모델이 됐다.
혼불문학관 문화해설사 황영순(54·여)씨는 “박씨는 기억력이 좋고 학식이 높아 말씀도 조리있게 잘하고 건강했다.”면서 “자녀들이 조석으로 문안전화를 하고 한 달에 두번 정도 방문하는 효자들”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빈소는 서울대병원과 남원 의료원 2곳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서울대 병원에서 열리며, 장지는 종가 옆 선산이다.
한편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전북애향대상, 단재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고 1998년 지병인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2007-05-16 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