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매운 맛을 보고 하는 쓴맛 생각/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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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5-10 00:00
입력 2007-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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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소설가
성석제 소설가
유명한 쌈밥집에 가서 쌈을 주문하고 앉아 있는데 이웃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아니, 씀바귀가 쓰지를 않잖아. 요새 왜 이렇지?”

그러자 앞에 앉은 사람이 받는다.“고추도 하나도 안 매워.”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존재하는 식물은 대부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기제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독이다. 독이 없으면 맛이 없다는 신호라도 보내야 한다. 그게 시큼하거나 떫거나 쓴 맛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구상에는 독은 물론 떫고 쓴 맛을 즐기는 동물이 있으니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이다. 특히 쓴맛은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는 경구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어서 그런지 쓴 것을 약으로 알고 먹는 사람이 꽤 있다. 쓴맛은 다음에 오는 다른 맛을 돋우는 역할도 하므로 맛의 전령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봄맞이 가자’라는 동요에는 “나물 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서 /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보자”라는 가사가 들어 있는데 가사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야생이던 달래, 냉이, 씀바귀가 요즘은 모두 철에 상관없이 재배, 출하되고 있다. 급격히 늘어난 인구와 팽창된 외식산업에 따르는 수요를 아이들이 옆구리에 바구니 끼고 가서 캐오는 정도로는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물품을 시장이 요구하면 공급이 따르는 것은 시장경제의 논리상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물품이 공장 물건이 아닌 생물인데 고유의 성격을 잃어버린다면 문제가 좀 있다.

고추의 ‘고’는 쓸 고(苦) 자로 원래 씀바귀를 의미하는 글자이기도 하다. 요즘 고추가 모양만 고추답게 생겼을 뿐, 그다지 맵지 않은 것은 많은 사람이 매운 맛을 꺼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곧 고추의 방어기제를 제거한, 순치된 종의 고추를 재배하고 먹게 되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동요를 인용하자면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할 일이 없게 되었다.

“아주머니, 여기 청양고추 갖다 놨죠? 그거 좀 몇 개 갖다 주쇼.”

걸걸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경험이 있고 고집이 있는 사람의 말투다. 이어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하고 청양고추를 달라고 한다. 맨 뒤에 “저두요!” 하고 소리 쳐서 내게도 청양고추가 몇 개 왔다.

맨 처음 청양고추를 요구한 남자가 다시 한 번 선구자로서의 모범을 보인다. 고추장을 듬뿍 찍어서 입에 넣고는 “고추는 이 맛이라니까!” 하는데 금세 코끝에 땀방울이 맺힌다. 하지만 너무 맵다. 청양고추는 매운맛을 내는 물질인 캡사이신 함량이 일반 고추의 예닐곱 배이다. 이런 걸 먹고서 속이 괜찮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씀바귀에서 쓴맛이 줄어들고 고추에서 매운맛이 줄어들어 쌈밥집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고추의 매운맛을 극대화시킨 상품이 나와서 사람들이 특별히 찾을 경우에 ‘서비스’로 제공이 된다. 좀 바빠 보이긴 하지만 음식점은 과거의 “차려주는 대로 먹는” 손님 이상의 까다로운 손님도 만족시키고 있는 셈이다.

음식점 맞은편 편의점 계산대 바로 옆에는 단맛이 전혀 없는 초콜릿, 곧 카카오 함량 100퍼센트 초콜릿이 자리잡고 있다. 쓰지 않은 씀바귀가 불만이고, 진짜 쓴맛을 보고 싶다면 이 초콜릿을 먹으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순치된 음식을 먹는 우리 역시 순치된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우리 각자가 교육받지 않은 야생의 인간으로 살면서 무슨 사변이라도 일으키자는 게 아니라 물려받은, 원래 있던 그대로의 개성이나 취향 정도는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건 아닐까. 아직 청양고추가 준 강력한 펀치의 얼얼함이 가시지 않은 채로 하는 생각이다.

성석제 소설가
2007-05-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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