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긴급조치’ 사과하는 판사가 없다/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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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2-06 00:00
입력 200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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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선 특임논설위원
황진선 특임논설위원
1970년대 중후반 학번의 대학 선후배가 모처럼 대폿집에 마주 앉았다. 이제 둘다 50대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긴급조치위반 사건 담당 판사의 명단이 공개된 데까지 이어졌다. 변호사인 선배는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운동권 출신 후배의 반론도 만만찮았다.

“아다시피 유신헌법은 필요한 때에는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할 수 있도록 했고, 사법심사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규정했어. 긴급조치는 위헌여부를 다툴 수도 없게 되어 있었지. 그런데 이제와서 자연법이나 정의에 따라 재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사들을 비판하고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잘못이지. 판사는 자연법이 아니라 실정법에 따라 재판할 수밖에 없잖아.”

“인혁당 사건 정도는 아니지만 긴급조치로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징역을 살았어요. 시위를 모의하고 주도하다 경찰에 쫓겨다니고, 제적을 당했지요. 긴급조치 위반 기소 사건만 589건이었요. 그런데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어요.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고 모두가 나몰라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긴 하지만 악법도 법이란 말이 있잖아. 현재의 시각으로 당시 판사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아. 이를 테면 앞으로 사형제가 폐지된다해서, 이전에 사형 선고를 내린 판사들을 공개하고 비판한다면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사형제의 존폐는 민주적 입법 절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잖아요. 긴급조치는 유신시대 폭압적인 정치 구조의 산물이에요. 지금 여야가 긴급조치 무효화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는데, 긴급조치가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무고한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에는 찬성이지. 그런데 선진국 일수록 법원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우리 사회의 최종 ‘해결사’인 법원과 판사를 망쳐놓으면 만인에 대해 만인이 투쟁하는 사회가 될 수 있어. 이건 법조계의 신뢰회복 노력과는 별개의 문제야.”

“만약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판사들의 이름을 빼고 보고서를 만들었다면 국민들의 비판이 적지 않았을 거예요. 명예훼손이라거나 인적 청산을 하려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지만 긴급조치 사건 관련자들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그런 얘기 하기 어렵지요.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주장도 하던데 과거사 정리는 다음 정권으로 넘길 수 없는 문제지요.”

“판사가 법정에 들어서면 방청객들이 모두 일어서지 않는가. 검사와 변호사도 법정에 들어서면서 법대(法臺)를 향해 인사를 한다네. 그건 판사 개인이 아니라 판사라는 직위, 법원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네. 거듭 얘기하지만 사법부를 마구 흔들어 대선 안돼.”

“사법부는 존중해야 하지요. 그러나 인혁당의 ‘사법살인’이나 긴급조치 사건의 판사들이 무고한 희생자들에게 겸손하게 ‘그때 정의의 이름으로 행동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대법원이 ‘사법시스템이 짊어질 과오’라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반성하는 분들이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래야 진실로 화해가 되고, 반면교사도 되지 않겠어요.” “글쎄, 판사들도 마음의 빚은 느끼고 있겠지…. 어찌됐든 사법부가 무너지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네.”



밤은 깊었고 취기는 올랐다. 두 사람은 어깨를 겯고 대폿집을 빠져나왔다.

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jshwang@seoul.co.kr
2007-02-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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