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보리밥 정치/이목희 논설위원
이목희 기자
수정 2007-02-03 00:00
입력 2007-02-03 00:00
그는 이념좌표상에서 박근혜의 현상타개책으로 두가지 방법을 들었다. 첫째는 중도개혁 노선으로 과감한 전환. 둘째는 다른 대선주자를 진보쪽으로 미는 방안이었다. 며칠 전부터 한나라당에서 정체성 논란이 한창이다. 박근혜 캠프가 배후라는 의심을 받는다. 그것이 맞다면 박 캠프가 둘째 방법을 채택해 반격에 나섰다고 봐야 한다. 손학규·원희룡·고진화는 물론 이명박까지 싸잡아 왼쪽으로 모는데 성공하면 보수·중도표를 장악할 기회가 생긴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한나라당내 정체성 충돌은 흰밥·보리밥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보수라는 흰쌀밥에 진보·중도의 보리쌀을 섞지 말자는 게 박근혜와 가까운 쪽의 주장이었다. 보리밥이 좋은 사람은 당을 떠나라는 극언까지 나왔다. 보리로 지칭된 이들이 당연히 발끈했다.“보리쌀이 섞여도 정체성에 큰 혼란은 오지 않는다. 적절한 혼식은 당을 건강하게 해서 대선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반박했다. 당 색깔을 분명히 하자는 주장이 정치학 원론에선 맞다. 흰쌀과 보리쌀이 절반으로, 뭐가 뭔지 모르게 한다면 유권자에게 실례다. 하지만 보리쌀을 적당량 섞어 영양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괜찮다고 본다. 지금 한나라당은 너무 보수화하지 않느냐는 걱정의 목소리를 듣는다. 때문에 보리쌀을 아예 들어내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극좌나 극우가 힘을 쓰는 사회는 건강을 유지하기 힘들다. 정당내 이념편차를 인정해야 한다. 영양의 균형이 깨지기 쉬운 봄·가을엔 잡곡밥을 먹으라는 선인들의 지혜를 되살려야 한다. 또 한나라당의 정체성 논란은 정책차이보다는 인신공격에 가깝다.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난닝구(실용)-빽바지(개혁) 논쟁으로 자멸의 길에 들어선 열린우리당의 아픈 선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7-02-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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