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그때 그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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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1-13 00:00
입력 2007-01-13 00:00
2004년 김근태(GT) 열린우리당 의장이 정동영 전 의장·정동채 의원과 함께 입각하기 며칠 전 그와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된 상태였지만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GT는 통일부 장관에 대한 강한 미련을 거듭 표시하며 막판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차선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임명권자인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1990년대 후반 초선의 야당 의원 GT는 출입기자들에게 꽤 인기가 높았다. 그는 민주화운동의 거목이 주는 중압감을 기자들이 느끼지 않게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와 함께 한 저녁 자리는 3시간을 넘는 게 기본이었고, 언제나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그에겐 그런 능력이 있다.

2002년 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선거자금 2000만원 수수 사실 고백 역시 GT에 대한 인물평을 할 때 빠지지 않는다.

그랬다. 김근태는 기존 정치권과는 잘 맞지 않는 ‘희귀한’ 존재였다. 임명권자가 복지부 장관에 임명하겠다는데, 그 자리는 싫다고 반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과거 정치권에선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경선 자금 수수 고백도 그렇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일을 그는 저질렀다. 어느 자리에서나 진지함을 잃지 않는 것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런 모습을 기자는 ‘원칙주의자 김근태’로 규정짓고 싶다. 아직도 오피니언 그룹에서 꽤 인기가 높은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거짓말을 할 것 같지 않은 정치인 순위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GT가 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장이란 자리가 주는 중압감 탓일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도 하고, 잘 안 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일도 목격된다. 그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권위주의 모습도 눈에 띈다. 특히 그가 통합신당의 중심축 역할을 자임하면서부터 무리수를 두는 모양새다. 정동영 전 의장과의 양자회동은 마치 김영삼-김대중의 ‘양김 회동’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이 회동은 당내에서 2선 후퇴론까지 야기하지 않았던가. 계파 수장이란 것도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 옷 같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그는 국민들을 헷갈리게 했다.‘대통령은 정치에서 손을 떼야 하고 신당은 누구의 영향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며 노 대통령 배제론을 주창했던 그가 “정권 재창출을 위해 통합신당 추진 과정에 대통령의 힘과 지원을 부탁하고 싶다. 신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마음과 힘을 같이 한다면 신당 당적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입장을 확 바꿔버린 것이다. 지리멸렬한 여당을 이끌어가야 하는 그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노 대통령과 각을 세워봐야 좋을 게 없다는 현실론도 외면할 수 없다.

더욱이 지금은 노 대통령발(發) 개헌정국이다. 대권고지 등정을 꿈꾸는 그로선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다 고전하고 있는 ‘고건 학습효과’를 모를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것은 ‘김근태식’이 아니다. 현실주의자 김근태보다는 원칙주의자 김근태가 우리에겐 더 친근하다. 우리 사회도 비록 대통령은 못 됐지만 더 비중 있는 국가원로로서 추앙받는 인물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GT의 숙고를 기다려본다.

jthan@seoul.co.kr

2007-01-1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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