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베트남전 되나” 우려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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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기자
수정 2007-01-12 00:00
입력 2007-01-12 00:00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진 않는다. 하지만 2006년 1월 미 지도부의 이라크전(2003∼현재) 대응은 베트남전(1959∼1975년)의 닮은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야당과 군부 등의 ‘철군’ 여론을 뒤로한 채 2만여명의 병력 증파안을 내놓자, 베트남전 악몽을 연상시킨다는 우려와 비판섞인 분석들이 제기되고 있다. 전황에 대한 미 지도부의 오판과 1968년 1월 베트콩의 정월 대공세 이후 병력 증파,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베트남에 책임을 이양시키려 한 정책이 2006년 1월 부시 대통령의 ‘마이웨이’와 판박이란 설명이다. 미국은 결국 1973년 베트남에서 철군을 시작했고, 전쟁은 1975년 4월30일 북 베트남의 사이공 함락으로 끝이 났다.

우선 꼽히는 닮은 꼴은 정부에 스며있는 잘못된 낙관주의다. 또 병력 증파가 수렁에서 벗어날 해법이란 믿음도 그대로다.USA 투데이는 이날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1969년 임기 중 마지막 국정 연설에서 월남의 평화 전망이 더없이 밝으며, 월맹을 이길 가망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면서 그러나 그의 연설 이후 미군이 사이공을 포기할 때까지 2만 1000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최고사령관인 대통령이 적을 과소평가하고, 국민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꼭 닮았다는 것.

물론 베트남전은 북베트남인 전체와 게릴라들을 상대로 해야 했고, 병력이 50만명 이상 투입된 대규모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두번째는 자문단 의견의 무시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연구그룹(ISG)의 철군 의견을 거부했다. 존슨 대통령 때도 그랬다. 회고록에서 존슨 대통령은 “미래에 대한 확신과 회의속에서 갈등을 빚었다.”면서 “당시 전쟁을 수행한 장군들은 베트남 현지군의 역할로 상황이 진전되고 있다고 보고했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당시 대외정책 자문그룹(Wise Man)이 언론의 비관적인 보도에 휘둘리는 것 아닌가 우려했다.”고 밝혔다. 당시 자문그룹도 베트남전 미래를 비관적으로 내다보며 철군을 주장했다. 존슨 대통령이 당시 국민들에겐 희망을 얘기하면서도 내심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발을 더 깊게 담금으로써 ‘승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신념을 드러낸 부시 대통령의 내심은 어떨까.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2007-01-1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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