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미국의 뒷골목 있는 그대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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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면 기자
수정 2007-01-06 00:00
입력 2007-01-06 00:00
19세기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역사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1831년 미국의 감옥을 탐방하겠다며 미국 여행에 나섰다. 거기엔 물론 뉴잉글랜드 식민지에서 민주주의 혁명의 원형을 찾아보겠다는 뜻도 담겼다. 토크빌은 수개월 동안 미국에 머물며 미국 사회 곳곳을 돌아봤다. 그리고 불후의 고전을 남겼다.

현대 민주주의의 비전을 예견하고 대중독재의 출현을 경고한 ‘미국의 민주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 소설가, 영화감독이기도 한 베르나르 앙리 레비도 170여년 전 토크빌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 대륙을 누빈 뒤 한 권의 탁월한 저서를 남겼다.‘아메리칸 버티고(American Vertigo)’라는 책이다. 미국의 시사지 ‘월간 애틀랜틱’이 토크빌 탄생 200주년(2005년)을 맞아 제안한 ‘토크빌의 발자취를 좇는 여행’을 수락하고 책까지 쓰게 된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자신의 이름자를 딴 ‘BHL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화제를 모은 미국 탐사기 ‘아메리칸 버티고’(황금부엉이 펴냄)가 김병욱(성균관대 인문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씨의 번역으로 나왔다.

이 책은 여행기이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신변잡기적이거나 박물지적인 여행담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를 ‘반반미주의자(anti-antiamericanist)’라고 부르는 저자는 감상에 현혹됨이 없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정면으로 읽어낸다. 이를 위해 1년 동안 미국 전역을 돌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했다. 책에는 아메리칸 드림 속에 유대인에 대한 경쟁의식이 만만찮은 아랍인, 착한 시민도 애국자도 아니라고 강조하는 아미시 공동체의 노파, 동포들의 밀입국을 막는 임무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미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멕시코계 국경순찰대원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저자는 장 자크 루소가 그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말한 이른바 ‘나그네 철학자’라 할 만하다.

여행을 끝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자신의 위기와 운명에 대해 이토록 근심스럽게 파고드는 나라도 없고,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에 현기증을 느끼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 국가적 우려의 정체는 무엇일까. 저자는 미국의 혼란과 불안의 징후 가운데 하나로 극단적인 빈곤영역의 팽창을 꼽는다.“할렘이나 보스턴 혹은 워싱턴의 저급 지구 등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는, 사회가 결정적으로 내팽개쳐 버린 사람들과 미국에 산재한 감옥 수감자들”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맨해튼의 마천루를 사랑했고 미국적인 생활방식을 찬양했던 장 폴 사르트르는 매카시즘 열풍을 지켜보며 “미국이 광견병을 앓고 있다.”고 외쳤다. 저자는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며 지금 우리가 차원은 다르지만 그 어두운 시절로 회귀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저자의 결론은 절망적이지 않다.“미국의 혼란과 역기능과 불안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도 내부의 문명전쟁이나 분리의 위험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토크빌은 미국을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는 천 갈래 길을 숨긴 숲”이라고 묘사했다. 미국의 전체상을 온전히 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반미·친미의 이분법을 너머 미국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만연체 문장에 사변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는 게 무엇보다 큰 강점이다.1만 65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2007-01-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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