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김려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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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수 기자
수정 2007-01-06 00:00
입력 2007-01-06 00:00

우리 활동사진의 역사

활동사진 또는 팔딱사진, 움직사진이라고 불렸던 영화는 언제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됐을까.‘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김려실 지음 삼인 펴냄)’는 1901∼1945년 한국영화사를 되짚은 기록이다.

영화와 문학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학문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일본 교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천착하고 있는 연구주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상영된 외국영화가 어떤 맥락에서 수입되고 수용되었는가이다. 이 책은 그간 연구의 결실이다.

1919년 콜레라가 유행하자 위생 관념을 보급하기 위해 조선인의 손으로 처음 연쇄극 ‘호열자(콜레라) 예방에 관한 활동사진’이 제작됐다. 연쇄극은 활동사진을 신파극 상영 도중 영사하는 양식으로 ‘연극도 영화도 아닌 통조림 연극’ ‘신파극의 변태’ ‘영화로 보기에는 무리한 연극의 변형양식’ 등으로 불렸다.1945년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조선인은 약 180편의 영화를 제작했으나 해방기의 혼돈과 6·25전쟁을 겪으며 대부분 소실됐다.1998년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가 전후 소련이 수집한 일본영화 가운데 ‘심청(1937년)’ ‘어화(1938년)’ 등 조선영화를 발견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후 러시아와 중국에서 ‘망루의 결사대(1943년)’ ‘군용열차(1938년)’ 등을 발굴한다.2005년 2월28일 국회에서 28분간 편집된 발굴영화 하이라이트가 상영되자 한국영화 전공자들은 고분을 발견한 고고학자처럼 흥분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저자는 발굴된 한국영화를 실제로 보고 낙담하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식민지 시대 영화 중 일부가 친일영화란 것은 이미 알고 있있지만, 그 시대의 광기를 스크린으로 마주하는 것은 괴로운 경험이었다고 술회한다. 심지어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다고 평가받던 영화에서도 일장기가 게양되고 황국신민서사가 제창됐다.



저자는 이제 한국 영화학자가 해야 할 일은 기억을 날조한 학문적 패러다임을 냉정히 평가하고, 은폐되고 망각된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밝힌다.1937년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고 레코드회사 사장, 기생, 영화배우 등이 경무국장에게 공개탄원서를 보낼 만큼 일제시대에도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다. 꼼꼼한 자료 분석과 사진 등으로 채워진 일제시대 카메라에 담겼던 필름에 대한 기록은 때로 재미있고 때로 한탄스럽다.1만 8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07-01-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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