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딛고 일어선 근로자·기업들] GM대우 부평공장 복직 정주교씨
박경호 기자
수정 2007-01-01 00:00
입력 2007-01-01 00:00
작업장에 도착해 간단히 체조를 하고 주변을 정리한 뒤 아침 8시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아빠가 일하는 이 곳 GM대우 부평공장에서는 45초만에 자동차 한대가 ‘뚝딱’하고 만들어진다. 아빠는 우리 진희가 자동차를 타고다닐 때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해주는 안전벨트를 만들고 있단다.
진희야.10년 전 그러니까 네가 3살이던 때 외환위기라는 괴물이 우리나라에 들이닥쳤다. 아빠, 엄마의 고생도 이때 시작됐다. 아빠는 하루라도 빨리 다시 일하고 싶었단다.1990년부터 아빠가 일하고 사랑하는 엄마와 결혼하게 해주고 또 사랑하는 너를 만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직장이었기 때문이지. 하루는 네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단다.“아빠가 집에 안 들어온다.”며 네가 울고보챈다더라. 그때 아빠의 고생이 네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네 생일에 다른 아빠들처럼 케이크 하나도 못 사줬던 미안한 마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엄마에게는 결혼기념일도 못 챙겼다. 일터를 잃고 돈을 벌기 위해 새벽마다 공사장에 나가면서 아빠는 마치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혹시나 진희가 아빠를 능력없는 사람으로 볼까봐 걱정도 들었고 솔직히 두렵기도 했다. 아빠 대신 돈 벌러 나간 엄마도 진희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도 아빠를 믿고 따라준 엄마와 진희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다. 아빠는 이제 40살이란다. 옛 어른들은 아빠 나이를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맡은 일을 한다.”는 뜻에서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네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마.
새해가 되니 네 할아버지가 더 그립구나. 아빠가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잖니. 아빠가 다니던 회사에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한 날은 2002년 12월23일이었다. 복직을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위해 2003년 새해 차례상을 차렸을 때 엄마와 아빠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진희야, 올해는 황금돼지해란다. 너도 돼지띠지. 돼지는 머리도 좋고 튼튼한 동물이란다. 진희야 올해부터는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해지길 바란다. 아빠도 그동안 쉬었던 방송통신대 공부를 마치고 꼭 졸업하도록 할게. 진희야 우리 행복하게 살자. 외환위기는 아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지만 진희와 엄마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 같구나.
2007년 1월1일 사랑하는 아빠가.
※GM대우 부평공장에서 근무하는 정주교 기사원의 동의를 얻어 편지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정주교 기사원은 외환위기 뒤에 회사를 그만뒀으나 최근 회사의 실적이 좋아져 복직했습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2007-01-01 4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