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6년차 30대 두 작가의 연작소설집
수정 2006-11-24 00:00
입력 2006-11-24 00:00
■ 첫. 사. 랑. 잊지못할 기억들 14편
김종은의 ‘첫사랑’(민음사)은 누구나 가슴 한편에 아릿하게 간직한 비밀스런 추억의 언저리를 건드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줄기차게 다뤄져온 진부한 주제지만 전작들에서 경쾌한 감수성을 인정받은 작가는 이를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풀어낸다. 소설은 첫사랑의 실체를 다양한 선율과 리듬으로 변주해낸 1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작가의 이력을 빼닮은 1974년생 남자 ‘정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탓에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도 읽힌다.
“첫사랑 없어요?첫사랑 얘기 좀 해보라니까요.” 친구의 부탁으로 소개팅 자리에 대신 나간 ‘정은’은 상대 여자의 갑작스런 질문에 불현듯 시간을 거슬러 첫사랑에 얽힌 옛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그 기억들속에는 교회 예배당에서 정은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소녀가 있고, 정은의 눈에 천사로만 보였던 술집 아가씨도 있다.
첫사랑의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어릴 적 애써 모았던 딱지, 구슬같은 사물이나 “연애라도 하는 듯 즐거웠던” 소설도 정은에겐 잊지못할 첫사랑의 기억이다. 그리고 자신의 첫사랑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첫사랑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임현정의 ‘첫사랑’, 이은하의 ‘미소를 띠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등 곳곳에 녹아있는 대중문화 코드가 타임머신마냥 독자를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려놓는 것도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9500원.
■ 정. 체. 성. ‘나’ 찾아 떠나는 글쓰기 김종호의 ‘산해경草’(랜덤하우스)를 읽기 위해선 독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서사의 틀을 깨는 자유분방한 텍스트 구성, 과감한 문법해체, 난해한 형이상학적 사변 등이 책장을 쉬 넘기지 못하게 한다.
소설의 서두는 글을 쓰는 화자 ‘나’의 얘기로 시작한다.‘나’는 ‘너-그녀’가 떠나가자 상실감을 메우려 글을 쓴다. 글쓰기를 통해 그녀와 다시 만날 방법을 모색하지만 글을 쓰는 도중에 ‘나’는 애벌레에서 고치로, 그리고 나비로 변모하는 환각의 세계를 경험한다.
소설에서 명확한 것은 없다.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나’의 실체도 모호하다. 작가가 강조한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말해주듯 다만 쓰는 행위를 하는 ‘나’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주체적 행위자로 존재한다.
평론가 김인호의 말을 빌리면 김종호는 “문학이 세계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서 문학 자체의 문제에만 파고드는”작가다.
말(언어)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꿈과 환상을 다룬 등단작 ‘섞어가다, 말’, 욕망과 무의식이 뒤엉킨 사유의 세계에 천착한 첫 소설집 ‘검은 소설이 보내다’에 이어 작가는 이번 연작소설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굳건히 지켜가고 있다.98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6-11-24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