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성공한 그룹들] (1) 삼성
김경두 기자
수정 2006-11-10 00:00
입력 2006-11-10 00:00
“모두 바꿔” 13년… 초일류기업 ‘우뚝’
1953년 제일제당(현 CJ)과 1954년 제일모직으로 그룹의 기틀을 다진 삼성.50여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자산 115조 9000억원,2005년 매출 139조 5000억원, 세전이익 12조 5000억원, 수출 600억달러라는 매머드급 기업으로 성장했다. 업종도 제분과 모직물 등 종전의 경공업 중심에서 전자, 정보기술(IT), 중공업, 석유화학, 기계 등 첨단과 중화학분야로 확실히 탈바꿈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만 해도 삼성은 지금처럼 독보적인 그룹은 아니었다. 자동차·중공업·건설 등 기간산업이 강한 현대그룹과는 비교가 되지도 않았다.1991년 현대중공업의 순이익은 2000억원 정도였다. 당시 삼성그룹 전 계열사의 순이익을 합해도 2000억원이 되지않았다.
그래서 당시 재계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에게 “어떻게 삼성그룹 전 계열사의 순이익이 현대중공업에도 미치지 못하느냐.”고 질책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특히 삼성반도체(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는 1983년 사업 시작 이후 수년간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98년 삼성전자의 매출은 20조 1000억원, 순이익은 3000억원이었다. 영업이익률은 1.5%인 그저그런 기업이었다. 그러던 삼성전자가 2000년부터 전혀 다른 기업으로 탈바꿈했다.2000년부터 매출과 순이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한국 대표’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됐다.2000년부터 2005년까지 올린 순이익은 무려 40조 4000억원으로 삼성전자 누적 순이익의 83%나 됐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수출은 우리나라 전체의 약 5분의 1이나 됐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지난해에는 세계 20위(150억달러)에 올랐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견조한 사업구조를 갖추게 된 것은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대비한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휴대전화’ 등 주력사업의 삼각 황금분할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윤종용 부회장은 “아날로그 시대에는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어려웠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단 2개월만 늦어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스피드와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한번 승자가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변화하는 자 만이 발전’
삼성전자의 이같은 고속 성장은 1969년 전자업계의 후발주자로 출발할 당시 ‘중복투자’ 등의 비난에 휘말렸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은 최고경영자(CEO)의 결단이 오늘날의 삼성전자를 만든 셈이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1974년에 회사 돈이 아닌 사재를 털어 당시 경영위기에 빠졌던 한국반도체(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전신)를 사들였다. 삼성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예고했던 것이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1983년 2월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사업에 그룹의 명운을 걸었다.”며 ‘반도체 올인’을 선언했다. 그 해 12월 삼성은 64K D램을 세계 세번째로 개발했다.1992년에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1993년 이후 세계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또 정보통신과 LCD, 디지털미디어, 생활가전 등에서도 세계 1위와 세계 최초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화려한 실적은 경기가 좋지않을 때에도 꾸준히 연구개발(R&D)과 인력에 대한 투자는 계속해야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밑바탕이 됐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운이 좋았다는 말도 하고있다.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반도체 부문의 시황이 좋지않았을 경우 삼성그룹은 어려운 상황을 맞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일본 재계와 언론에서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에 대한 벤치마킹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새삼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2006-11-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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