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권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지음
수정 2006-10-14 00:00
입력 2006-10-14 00:00
아이히만의 ‘평범한 惡’ 재조명
오늘 탄생 100주년을 맞는 아렌트는 이 책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인간도살장으로 내모는 아이히만의 정치적 악행을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야기는 결말부터 시작된다.
‘정의의 집’이라는 법정 정리의 외침과 더불어 드라마는 시작된다. 아이히만은 법정의 유리보호대 속에 보이지만, 벤구리온은 막후 진행자로 법정에서는 보이지 않는다(제1장). 이어 평범한 시민이며 친유대적이었던 아이히만이 생존과 성공 욕구 때문에 나치당에 가입해 유대인 문제 전문가, 인간 도살자로 부상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2∼3장). 유대인들을 인간도살장으로 내모는 조직적인 과정(추방, 수용, 학살)에서 ‘인간됨’을 포기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은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4∼6장). 드라마의 주역은 반제(Wannsee)에 위치한 한 가정의 저녁모임을 계기로 본디오 빌라도라도 된 듯이 양심을 버린 채 ‘국가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인간 도살자로 변신한다(7∼8장). 이후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의 소거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9∼13장). 종결부에 이르러 아이히만은 “모두 만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사형당한다(15장). 아렌트는 바로 이 장면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말로 드라마 전체를 아우르며 이야기를 종결한다(15장과 후기).
이 책에 드러난 주옥같은 정치적 지혜들을 짧은 지면에 담기에는 부족하다. 이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그것은 바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다.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삶은 정치적 악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유대인들은 아렌트가 악마인 아이히만을 용서하고 동족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아렌트는 유대인위원회와 유대인 경찰의 나치 동조를 부각시켰다는 이유로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혀 소모적인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악의 평범성을 둘러싼 논쟁은 이후 수없이 제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쟁점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아렌트는 양심 문제, 조직화된 범죄와 책임 문제, 인간성 문제, 정치적 의무, 정치행위와 말의 관계 등 다양한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삶의 근본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 이 책은 치열한 학문적 논쟁의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정치평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평범한 것 같지만 심오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저자의 의도를 생생하게 살려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책이다. 아렌트 연구의 권위자인 숭실대 김선욱 교수의 진지한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일반정부를 총독관구로, 죽음의 수용소를 인간도살장으로 표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언어감각에 맞게 생소한 용어와 문장을 옮기려고 고심했으며 정화열(미국 모라비언대) 교수의 해제를 포함시킬 정도로 독자들을 배려한 역서이다.
홍원표 한국외대 정치철학 교수
2006-10-1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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