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686)-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32)
수정 2006-09-07 00:00
입력 2006-09-07 00:00
제2장 四端七情論(32)
그러나 정지운이 지은 ‘천명도설’과 퇴계의 의견을 따라 수정한 ‘천명신도’에 관한 내용은 그 무렵 유학자 사이에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대의 유학자들은 거의 모두 이 책을 구해 통독하는 한편 이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퇴계 자신도 ‘천명신도’가 나오기까지의 경위를 후서(後序)에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자술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퇴계는 자신과 정지운 두 사람 간에 오간 주요한 내용에 대해 다시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하고 있다.
“…나는 지운에게 물었다.
‘지금 이 그림이 교가 전한 것과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지운은 대답하였다.
‘전에 모재(慕齋:김안국), 사재(思齋:김정국) 두 선생 문하에서 공부할 때 그 서론을 듣고 물러나와 사제(舍弟)와 더불어 종지를 강구하였으나 성리가 미묘한 까닭에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시(試)하여 주자의 설을 취하고 제가의 설을 참고로 하여 하나의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모재 선생께 가서 질의하였더니, 선생께서는 잘못이라고 꾸지람하시지 않고 그것을 책상머리에 놓아두시고 여러 날을 골몰히 생각하셨습니다. 착오된 곳이 없는가 물으니 오래 더 연구해 보지 않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간혹 배우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이것을 내보이고 이야기를 해 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윽고 다시 사재 선생께 질의해 보았으나 역시 책망하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양 선생께서 후진을 달래어 나아가게 하는 뜻이요, 그 그림이 잘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때 동문생들이 이것을 베껴 가지고 사우(士友)들 간에 전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뒤에 잘못된 것을 깨닫고 고쳐 놓은 곳도 많았습니다. 이것이 전후가 달라진 이유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초고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지만 원컨대 정정하여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지운의 말을 듣고 나는 대답하였다.
‘양 선생이 함부로 시비를 논하지 않음은 물론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오늘날에 있어서 우리들이 학문을 강구하면서 타당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으면 어찌 그대로 두고 남을 따르거나 잘못을 그대로 변명만 하고 시비를 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사후 간에 전해진 것이 이미 양 선생의 시정을 받은 것임에도 여전히 착오가 있음을 면치 못했다면 사문에 누됨이 또한 크지 아니한가.’”
2006-09-0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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