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용 목사님을 보내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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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6-08-18 00:00
입력 2006-08-18 00:00

김지하 시인의 추모글

하늘이 흐립니다

목사님

하늘이 흐립니다.

서거하심을 전해 듣고 문득 고개를 드니 하늘이 흐립니다.

빗줄기가 아닌 한줄기 스산함입니다.

목사님

당신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사람 없는 대지에 홀로 우뚝 서 잃어버린 민족의 북두를 가리키신 분입니다.

눈물이 솟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흐린 어느 한 날

바람과 물 연구소로 가던 길 위에서 당신은 내게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의 불인(不仁)은 인간의 불인(不忍) 때문입니다-

그것은 삭풍의 땅, 북간도의 밤길을 홀로 뚜벅뚜벅 걸어오시던 혼돈적 질서요, 혼돈 그 나름의 길이었습니다.

그것이 또한 다름 아닌 바람과 물의 길이었습니다.

목사님

하늘이 흐립니다.

하늘만큼 땅도 흐리고 사람은 더욱 흐립니다.

서러움이 아닌 한줄기 그리움입니다.

목사님

당신은 그런 분이십니다.

나라 안팎에 사람이 없어 잃어버린 민족의 북두를 이젠 그에 새까맣게 잊어버린 이 혼돈 속을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 혼돈 그 나름의 눈부신 눈부신 흰 길을 가르쳐 주실 분.

눈물도 솟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온통 흐린 날

바람과 물 연구소로 가는 텅 빈 우리 모두의 마음의 길 위에서 당신은 다시금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인간의 불인(不仁)은 하늘의 불인(不忍)을 이끌고 옵니다-

안녕히 가옵소서.

김지하 모심
2006-08-1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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