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작통권 논의시점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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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기자
수정 2006-08-12 00:00
입력 2006-08-12 00:00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추진 시점을 두고 정부와 반대론자들 공방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작통권 환수 추진이 ‘졸속이고 신중치 못하다.’는 비판에 청와대가 과거 정권부터 준비해온 일이라고 반박하고, 이어 전직 청와대 고위 인사의 재반박, 다시 청와대 고위인사의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실체를 파악하기 혼란스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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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통권 환수 찬반집회 11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찬반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각각 열렸다.서울역 광장에서는 대한민국 성우회(예비역 장성모임)와 국민행동본부가 반대 집회(왼쪽)를,광화문 한국통신 앞에서는 주한미군 철수연대 회원들이 찬성 집회를 열었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작통권 환수 찬반집회
11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찬반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각각 열렸다.서울역 광장에서는 대한민국 성우회(예비역 장성모임)와 국민행동본부가 반대 집회(왼쪽)를,광화문 한국통신 앞에서는 주한미군 철수연대 회원들이 찬성 집회를 열었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송민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은 지난 10일 “작통권 환수가 참여정부 들어 추진된 것이 아니다.”면서 “1988년부터 연구가 검토돼 1990년 합동참모본부와 91년 국방부가 ‘93년 평시작전권 환수·95년 전시작전권 환수’를 내부 계획으로 세웠다.”고 밝혔다. 미측과는 1991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와 합참의장간 군사위원회(MCM)에서 ‘93∼95년 평시작전권 이양, 전시작전권은 96년 이후 한·미간 공동연구로 판단한다.’고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1988∼1993)시절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던 김종휘씨는 11일 “노태우 대통령 때 전시작전권이 입안되고 결정됐다는 것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검토된 바도 없다.”고 부인했다.

이에 청와대가 다시 반격에 나섰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서주석 안보수석 명의의 글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공약이자, 집권후 추진한 정책은 작통권 전체의 환수였다.”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 우선 평시 작통권을 환수하고, 전시 작통권은 추후 환수키로 (한·미간) 합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 작통권 환수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전직 국방장관들을 겨냥, 청와대는 “이상훈 전 장관은 1990년 3월 국회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이 주도적 역할에서 지원적 역할로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주권국가로서의 작전권 문제를 논의할 때가 온 것이라고 본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을 향해서도 “참여정부가 쉬쉬하며 진행해 온 것도 아닌데 3년 내 별말이 없다가 보수 언론이 뒤늦게 문제삼자 덩달아 목소리를 높인다.”고 비난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시 작통권 환수 논의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의욕을 보이다 매번 덮었던 문제”라면서 “이유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행사할 정도의 수준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 기류가 바뀐 것은 참여정부 출범 직전부터다.‘환수’를 대전제로 군의 능력을 이에 맞춰 나간다는 차원으로 개념을 아예 바꿨다는 것이다. 전시 작통권 환수 요구를 한 것은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미군의 해외주둔재배치(GPR)문제 논의차 2003년 2월 말 방한했을 때다.‘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공동협의’ 결과 양국은 용산기지 이전, 전시작전통제권, 한국군의 전력증강 등 의제 설정에 합의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군의 대북 전력을 100% 따라잡는 것은 백년하청이니,70% 정도만 채워넣더라도 ‘환수’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2006-08-1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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