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로 읽는책] ‘반제국주의 정서’ 민족일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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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기자
수정 2006-07-01 00:00
입력 2006-07-01 00:00

민족일보 연구/김민환 지음

1961년 2월13일 첫선을 보인 ‘민족일보’는 단번에 3대 일간지로 꼽힐 정도의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혁신계의 목소리를 담다 보니 인쇄를 대행하던 서울신문이 이유없이 이를 거부,3일 정도 신문을 못내는 등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차에 터진 박정희의 5·16쿠데타가 결정적이었다.5월19일 신문이 폐간되고 같은 해 12월21일 조용수 사장이 사형됐다.

이 사건은 한국 보수의 칡드렁처럼 얽힌 뿌리도 보여주는데, 김종필 당시 중정부장은 수시로 법정을 들락거렸고 사건을 맡았던 혁명재판소 1심 재판부 배석판사는 26세의 신참법관 이회창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자민련’ 의원이 바로 이 ‘전력’을 거론하며 이회창에게 정계은퇴를 요구하고, 한나라당이 ‘그 사건의 주역은 김종필’이라고 아주 손쉽게 맞받아쳤던 것은 쓰디쓴 한국 현대사의 풍경이다. 더 웃긴 것은 조용수를 친북인사로 몰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신문사 창간자금을 지원해준 간첩으로 지목했던 ‘조총련계 인사’ 이영근이 죽었을 때, 노태우 정권은 그의 애국행위를 기리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민족일보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김민환 고려대 교수가 ‘민족일보 연구’(나남출판 펴냄)를 냈다. 이 책은 구체적으로 민족일보의 사설,1면 머리기사, 머리기사 제목, 편집스타일 등을 분석했다. 또 민족일보의 반미 성향에 대해서는 “소련과 북한에 대해서도 굉장히 비판적이었다는 점에서 친소용공의 반미였다기보다 미·소 양대국의 제국주의적 횡포에 분노한 지식인의 뿌리깊은 반제국주의정서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민족일보사건이 남긴 언론학적 의미를 다룬 8장이다.

여기서 김 교수는 민족일보를 ‘대안언론’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포용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협소함도 엄정히 비판하지만, 민족일보 역시 지나치게 조급했다고 지적한다.‘전략적 유연성’을 놓치지 않았다면 더 좋은 대안언론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다. 부록으로 민족일보 재판기록을 실었다.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06-07-0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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