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눈높이로 청사시설 바꿨죠”
정기홍 기자
수정 2006-06-28 00:00
입력 2006-06-28 00:00
박 사무관은 정통부에서 공직의 첫발을 디딘 이후 몇개 부서를 옮겼지만 소프트분야 행정이 가장 맞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향후 발전 가능성에도 무게를 뒀다. 다른 직원보다 ‘조금 더’ 불편한 신체조건도 감안했다.
그는 초임 사무관 시절을 정보관리담당관실에서 시작했다. 기술분야인 전산직이었다. 부서 배치 때 그를 기피한다는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한 기억도 갖고 있다. 지금 정통부 고위직에 있는 간부가 “같이 일하자.”고 손을 건네 무척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가 그동안 겪은 ‘좌충우돌(?) 생활백서’ 몇가지. 박 사무관은 활동적이어서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외식을 자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음식점 주인들이 예상보다 잘 대해줘 밥을 아주 맛있게, 즐겁게 먹고 들어온다. 또 하나는 ‘의전사령관(?)’ 신분. 의전이란 몸이 불편하다 보니 외부행사 때면 간부들이 자신을 ‘모시는’ 경우가 생긴다는 말이다. 가장 어렵고 신경 쓰이는 때다. 하지만 그는 예상치 못하든지, 포기하든지 그런 건 없단다. 걸림돌이 있으면 돌아가고 계단이 있으면 길가는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는 것이 지론이다. 어릴 때부터 장애가 몸에 배어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단지 보는 이가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장애우로 살면서 익힌 것은 ‘가식’을 갖지 말아야 편해진다는 인생관이다. 불편하면 도움을 청하고 해야 자신도, 주위 사람들도 불편하지 않다는 고집이다.
그는 애초부터 공직자를 꿈꾸지 않았다고 밝혔다.98년 학교(부산대 컴퓨터공학 석사) 졸업 후 전공분야를 찾았지만 실패했다.SI업체 등에 몇번을 지원했지만 신체조건 때문에 잠정 보류, 불합격 등의 딱지를 받았다. 한 이동통신 업체에서는 편의시설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했다. 대학 입시 때도 한의대에 입학을 원했지만 장애가 있어 안된다는 대답만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전공을 컴퓨터쪽으로 바꿨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인생 반려자를 맞이했다. 장애우들의 인터넷 봉사모임에서 만났다.2년여의 연애 끝에 지난해 9월 결혼했다. 그는 아내를 목발만 짚는 정도로 서울 구로성심병원의 약사라고 소개했다.“연애요? 불편하니 주로 차안에서 했죠. 연애 동안 제가 주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게 맘에 들었나봐요. 하하….” 그는 이처럼 밝고, 젊고, 진취적인 공직자였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2006-06-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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