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로 읽는책] 서양신화에 더 익숙한 우리를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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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기자
수정 2006-05-13 00:00
입력 2006-05-13 00:00
여기, 지난 50년간 한국인의 삶과 사랑,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온 노학자가 있다. 반만년 우리 신화와 전설에서 길어올린 한국인의 모습을 추적해온 석학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를 통해 한국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그가 이번에는 한국인의 맵짠 삶과 미학을 담은 한국인의 ‘한국인의 자서전’(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써냈다.

저자는 한국인의 절박한 삶과 정신세계를 찾기 위해 전국 곳곳에 분산된 문헌들을 조사하고 지역 사람들을 만나 잊혀져가는 우리 신화와 전설을 채록했다. 마르지 않은 상상력을 통해 신화와 전설 속에 담긴 한국인의 정체성과 정신세계를 탁원한 논리와 날카로운 예지를 통해 풀어내면서, 위트와 유머를 통해 존재론적 성찰까지 유도한다.

신화와 전설의 언어(뮈토스)를 푸는 데는 몇가지 열쇠가 있다. 저자는 뮈토스를 바탕으로 주체할 수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글을 읽다보면 명확해지는 상징 속에서 질박한 한국인의 삶이 절로 그려진다. 혹독하고 애절한, 순박하고 해학이 넘치는 한국인의 숨결이 곳곳에 스며있는 것. 뮈토스의 세계에서 추려낸 주옥같은 상징들은 ‘어머니’로 시작해 ‘탄생’‘자라고 크고’‘사랑’‘결혼’‘세상살이’‘죽음’ 등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며 집단 자서전의 원재료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게 길어올린 상징에는 현실과 희망을 잇는 ‘영혼의 동아줄’을 찾고 싶었다는 저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 상징의 세계 곳곳에 담긴 다양한 신화들은 흥미롭다. 저자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신에게 아기를 점지해 달라며 거대한 남근석에 ‘몽돌’을 비벼댄 ‘아기 빌이’를 비롯, 버려져서 영웅이 된 ‘바리데기’, 죽은 아기를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번데기무덤’ 등을 통해 열망과 사랑, 시련과 아픔, 순환론적 죽음론 등을 웅변한다. 또 우리의 첫 어머니인 물과 산을 시작으로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깊은 굴속에서 고해의 시간을 보낸 웅녀를 만난다.

우리 옛 여인들의 입술신화를 넘어 선덕여왕의 ‘섹스담론’을 듣는 대목에서는 뒤통수를 치는 혜안과 해학도 느껴진다.

저자는 “우리의 자서전이 여기서 끝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한국인의 맵고 짠 근성을 다져준 고난과 인내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집단 자서전은 더 많이, 널리 쓰여지고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다.‘그리스 로마신화’나 ‘삼국지’는 잘 알면서도 정작 우리 옛이야기에는 무관심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오래된 우리 상징의 세계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고유성을 알려주려는 노력이 담겨져 있는 책.1만 2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2006-05-1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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