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살다 간 ‘한국영화 큰 별’
황수정 기자
수정 2006-04-13 00:00
입력 2006-04-13 00:00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1953년 영화계 간판스타였던 최은희씨와의 결혼으로 그는 대중의 집중적 관심을 받았다.‘성춘향’‘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연산군’ 등 민족정서가 깃든 작품들로 해외에서 주목받으며 감독으로서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기는 1960년대.‘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당시 드물게 일본과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소개되기도 했다.
영화제작 시스템의 기초를 다진 주역으로도 그는 한국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메운다.1963년 안양촬영소를 인수해 66년 당시 국내 최대 영화사인 신필름을 설립,1970년까지 운영하며 숱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운명은 더이상 순탄치 않았다.1978년 최은희씨가 홍콩에서 납북된 뒤 그 역시 6개월만에 납북돼 86년 탈북하기까지 8년여를 북한에 억류됐다.
그의 영화 마니아로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목적으로 강제납북된 감독은 그곳에서 김 위원장의 전폭적 지원으로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운영하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소금’‘불가사리’‘심청전’(1985) 등을 제작했다.‘소금’으로 최은희씨는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돌아오지 않는 밀사’로 신 감독은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 감독상을 각각 받기도 했다.
그의 영화열정은 탈북 이후 2001년까지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변함없었다.KAL기 폭파사건을 그린 ‘마유미’(1990),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실종사건을 다룬 ‘증발’(1994) 등을 발표했다.2002년 치매노인 문제를 다룬 신구 주연의 ‘겨울이야기’를 75번째 작품으로 찍었으나, 미공개 유작으로 남았다.
2003년 안양신필름영화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동아방송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는 등 말년에도 후배양성과 한국영화 발전에 변함없는 애정을 쏟았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6년 함경북도 청진 출생
●45년 일본 도쿄 미술전문학교 졸업
●51년 영화예술협회 설립
●52년 영화 ‘악야(惡夜)´로 감독 데뷔
●53년 최은희씨와 결혼
●55∼76년 ‘춘희´ ‘로맨스 빠빠´ ‘성춘향´ ‘연산군´ 등 수십편의 영화 감독 및 제작. 대종상, 아시아영화제, 스테즈영화제(스페인) 등에서 수상
●78년 최은희씨와 함께 납북. 북한에서 ‘탈출기´ ‘돌아오지 않는 밀사´ ‘불가사리´ 등 제작
●86년 탈북
●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2000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장
●2002년 프랑스 도빌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장
●2003년 안양 신필름 아카데미 이사장
●2004년 동아방송대 석좌교수
2006-04-1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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