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Life] 작은 영어사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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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기자
수정 2006-03-04 00:00
입력 2006-03-04 00:00
가끔 집안 정리를 하면서 먼지 쌓인 책들을 뒤적이다 추억에 잠길 때가 있다. 케케한 냄새와 함께 자리만 차지하지만 버리면 왠지 소중한 추억마저 끊어져 버릴 것 같아 뒤가 개운치 않은 책들이다.

시골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던 ‘이솝우화집’. 난생 처음 동화책이라는 것을 받고 겉장이 닳아 떨어져나가도록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고등학교때 입시공부 한답시고 방안에 틀어박혀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었던 대하소설 ‘대망’, 대학시절의 젊은 혈기가 아직도 묻어 있는 듯한 ‘해방전후사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손바닥만한 영한사전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받은 ‘군수상’의 부상으로 받은 사전이다. 초등학교 6년간 개근상 빼고는 처음 받아본 상이었다. 상을 받고 기가 살았는지 공부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고, 까맣게 손때가 묻도록 사전을 뒤적이던 기억이 난다. 그 덕분인지 시골을 떠나 도회지로 고등학교 유학을 떠났고, 대학도 웬만한 곳에 가게 되었다.

꼭 영어사전이 아니라도 초등학교 졸업식 때 받은 상품은 참 각별하단 생각이 든다. 한데 요즘 졸업식이 영 썰렁해진 것을 얼마전 둘째 아이 졸업식에서 알았다.

상장을 수여할 때마다 ‘선거법상 부상은 주지 못하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란 아이의 김을 빼는 말이 후렴처럼 따라붙고 있었다. 교육감상, 국회의원상, 시장상, 시의원상, 시의회의장상, 도지사상 등 선거법에 걸리는 상은 왜 그리 많은지. 선거법이 뭔지 잘 알리 없는 상받는 아이의 표정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약삭빠른 이들은 잘만 빠져나가는 선거법이련만, 고작 1만∼2만원대의 졸업상품은 거기 걸려 졸업식 때마다 아이들을 실망시킬 것이다.‘작은 영어사전의 기쁨’을 아이들에게 되돌려 줄 방법은 없는 걸까.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2006-03-0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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