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죽음의 길서 엿 본 ‘生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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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녀 기자
수정 2006-02-17 00:00
입력 2006-02-17 00:00
상가(喪家)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떠난 자가 이승과 마지막으로 작별하는 그곳에서 산 자들은 자연의 섭리와 생의 비의(悲意)를 불현듯 깨닫는다.

친구의 빈소를 찾은 황동규(사진 왼쪽) 시인은 허망한 심정을 짐짓 이렇게 눙친다.‘사진은 계속 웃고 있더구나, 이 드러낸 채./그동안 지탱해준 내장 더 애먹이지 말고/예순 몇 해 같이 살아준 몸의 진 더 빼지 말고/슬쩍 내뺐구나!‘(‘참을 수 없을 만큼’중).

문인수(오른쪽) 시인은 친구 아버지의 상가에서 들은 이야기를 시로 썼다.‘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쉬!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쉬’중)

우연일까. 황동규(68)시인의 신작 시집 ‘꽃의 고요’(문학과지성사)와 문인수(61)시인의 새 시집 ‘쉬!’(문학동네)는 이처럼 죽음에 관한 단상으로 시심을 열어젖힌다. 황 시인은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년)이후 3년, 문 시인은 김달진문학상 수상작 ‘동강의 높은 새’(2000년)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시집에는 이순(耳順)을 넘긴 중견 시인들이 체득한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이 오롯이 담겨있다.

황 시인은 전작에서 선보였던 석가와 예수의 선문답을 이번 시집에서도 이어간다. 관념은 희석됐고, 목소리는 친근해졌다.‘…‘꽃지는 소리가 왜 이리 고요하지?’/꽃잎을 어깨로 맞고 있던 불타의 말에 예수가 답했다./‘고요도 소리의 집합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꽃이 울며 지기를 바라시는가,/왁자지껄 웃으며 지길 바라시는가?’(‘꽃의 고요’중)

‘‘요즘 멜 깁슨이라는 자가 만든/그대의 수난 영화가 가히 엽기적이라던데./지금껏 나는 그대가 고통보다는/환희의 존재라고 생각했지.’/불타가 입을 열자 예수가 말했다./‘이른 봄 복수초가 막 깨어나/눈 속에 첫 꽃잎 비벼 넣을 때/그건 고통일까 환희일까?’/‘막 시리겠지.’’(‘고통일까 환희일까?’전문)

시인은 “의미는 왔다가 간다. 이번 시집을 만든 지난 3년여는 ‘유마경’을 읽고가 아니라,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엮은 기간이었다.”고 책 앞머리에 적었다.

‘길위의 시인’이라 불리는 문 시인의 시는 현재진행형이다. 생의 진리를 찾아 늘 집 밖을 떠돈다.

‘민박집 바람벽에 기대앉아 잠 오지 않는다./밤바다 파도 소리가 자꾸 등 떠밀기 때문이다./무너진 힘으로 이는 파도소리는/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다./아 너라는 冊,/깜깜한 갈기의 이 무진장한 그리움.(‘바다책, 다시 채석강’전문)

‘너무 많이 돌아다녀 뒤축이 다 닳은 족적은 그동안/없는 뿌리를 앓아온 통점이거나 죄’(‘樹葬’중)라는 고백은 시인의 고된 여정을 드러낸다. 마흔에 늦깎이로 등단한 시인은 ‘늪이 늪에 젖듯이’‘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뿔’등을 펴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6-02-1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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