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희망심는 ‘한국의 헬렌 켈러’
이두걸 기자
수정 2005-12-23 00:00
입력 2005-12-23 00:00
첫번째 부류를 우리는 ‘공공의 적’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세상살이에 쫓겨 희망을 마음속 서랍에 팽개치기 일쑤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그러나 뿌옇게 먼지가 앉은 희망을 닦아내는 사람은 희망의 빛을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밝게 비춘다. 서울 송파구 인성장애인복지관 이창화(48) 관장이 그런 사람이다.
●7개의 사회복지시설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이 관장은 인성복지관뿐만 아니라 풍납종합사회복지관, 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 양재이동어린이집 등 7개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다산복지재단의 설립자다.
그는 시각장애 1급 장애인이기도 하다. 이 관장이 본 첫 세상은 희미하기만 했다. 태어난 지 백일만에 뇌수막염을 앓은 뒤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나마 자식 교육에 열성이었던 부모님을 둔 게 다행이었다.4살 때부터 가정교사가 따라붙었다.
덕분에 일반 학교인 배재중학교를 다녔다.‘반봉사’의 눈 탓에 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공부에 파고들었다. 전교 1등을 다툴 정도로 뛰어났다.‘한국판 헬렌켈러’라는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가슴 속 멍은 깊게 번져갔다.
이 관장은 “남들은 통합교육의 성공작이라고 치켜세웠지만 학교 생활은 너무나도 외롭고 고통스러웠다.”면서 “요즘도 가장 초조할 때면 잘 보이지 않는 한자 시험을 보는 꿈을 꾸곤 한다.”고 떠올렸다.
●아시아 첫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 만들어
그의 어렸을 때의 꿈은 시인이었다. 국립맹아학교 고등부에 진학해서도 밤을 새워가면서 서투른 점자책을 읽었다. 그러나 1학년을 마치고 나니 학교 도서관에서 더 이상 읽을 게 없었다. 다시는 도서관을 찾지 않았다. 고교 졸업 뒤 녹음도서관을 만들고 가톨릭 맹인선교회를 꾸린 것도 스스로 지식과 도움에 목말랐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고교 때 배운 침술과 마사지로 사업을 시작했다. 한 때 큰 사우나 시설을 운영하면서 제법 돈도 모았다. 그러면서도 중국 옌볜에 시각장애인 재활센터를 만드는 등 틈틈이 장애인 인권운동을 벌였다.
지난 95년부터는 사업을 접고 송파구에서 복지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난 99년에는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도 만들었다. 아시아에서 처음이었다. 그해 서울시민대상 본상을 수상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문자음성변환 프로 개발에도 앞장
3년 전에는 기업에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 휴대전화 이용자에게 들려주는 문자음성변환(TTS) 기능을 만들어 줄 것을 기업에 요구, 개발에 성공했다.
뛰어난 기술을 자랑하는 한국의 IT 업계에서 보면 ‘장난’ 수준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문명’을 선물한 일이었다.
최근에는 말을 못 하는 언어장애인들을 위한 음성 재현 프로그램 ‘다산 보이스 1.0’을 개발했다.
언어장애인이 하고 싶은 말을 컴퓨터 자판에 치면 음성으로 변환돼 수화기 너머 상대방이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헤드폰으로 듣는다.
이 프로그램은 언어장애인은 물론 성대 결절 장애 등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1만여명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CD를 무료로 배포할 계획이다.
●눈 뜨면 야한 동영상부터 보고 싶어
이 관장은 앞으 장애인 복지운동가로 활동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10월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을 만들었다. 장애인들이 소비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기업과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서다.
장애인 성(性) 문제도 관심사다. 그가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게 야한 동영상이다. 술, 담배는 물론 성욕까지도 억압하는 시설과 사회는 장애인들에게 ‘감옥’이다.
이 관장은 “장애인 복지의 목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생활할 수 있는 정상화(nomalization)”라면서 “장애인들이 단순히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고 권리를 얻어낼 수 있는 사회의 싹을 틔워나갈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2005-12-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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