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친일파 재산과 헌법적 정의/ 홍원식 원광대 통일헌법 교수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5-11-11 00:00
입력 2005-11-11 00:00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제, 발자국 함부로 남기지 말자.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 따라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미지 확대
홍원식 원광대 통일헌법 교수
홍원식 원광대 통일헌법 교수
백범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30여년만에 돌아왔을 때, 조국은 이미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점되어 있었다.

이 비탄스럽고 착잡한 현실을 달래며 백범은 자신의 숙소로 찾아와 흔적을 받아 가기를 소망하는 지인들에게 위의 글과 함께 많이 남긴 휘호는 간명하게 쓴 ‘民族正氣’(민족정기)였다. 현재 서울 수유리 통일교육원 한쪽에 돌비로 세워져 있다.

광복 직후 우리 민족의 최대 현안은 ‘친일반민족분자’들에 대한 청산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큰 대륙인 중국만 해도 이 역사적 과업을 철저히 진행하였다. 중국은 직접적 친일행위자뿐만 아니라 ‘친일행위방조자’들마저 혹독한 역사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과정이 없이는 헌법적(민족적) 정의 구현이 불가능하게 되고, 헌법적 정의의 수립이 없이는 ‘새로운 국가 창건’ 또한 불가능하게 됨은 자명한 일. 백범은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광복 조국의 이곳저곳을 순회하며 “친일파 청산을 통한 민족정기의 수립이야말로 당면한 최대 과제이며, 조국의 분단 저지 운동은 새로운 독립운동이다.”라고 역설하였다.

백범의 ‘민족정기’ 확립의 꿈은 논란은 있지만 남한보다 북한에서 상당부분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를 내세워 민족적 자존감이자 남측에 대한 정신적 우월성으로 강조해오고 있기도 하다.

주변의 역사적 환경이 이러하건만 방성대곡할 일이 친일반민족분자의 후손과 헌법적 정의를 외면하는 ‘일부’ 법관들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

‘친일반민족분자의 재산권 반환 청구 소송’과 원고 승소 판결이 그것이다. 대명천지에 이 무슨 후안무치한 소행이란 말인가! 이 모든 일들이 ‘민족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헌정사 뒤안에 남아 있는 부끄럽고 추악한 악취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민족정기’의 소독제로 말끔하게 청산하기를 지체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오늘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뒤따라 오는 후손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반민족분자들의 후손들은 ‘공수래공수거’인 소풍 같은 인생길에서 두고 떠날 재물에 눈이 어두워 대를 이어 ‘반민족분자’로 낙인찍히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사법부는 후안무치한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제기하는 소송을 처리함에 있어서 최고 규범인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헌법’과 법률에 의한 재판 의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 때 헌법은 “성문의 헌법 조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정기’에 터잡은 헌법적 정의 구현을 내용으로 하는 ‘실질적 헌법’을 의미한다.”는 국내외 헌법재판의 판례를 명심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의무를 소홀히하여 친일파 후손들의 손을 들어 주는 법관은 마땅히 반헌법, 반민족적 법관으로 간주하여 국회는 ‘탄핵소추’를, 정의로운 국민들은 해당 법관에 대한 ‘범국민 파면청원’ 운동이라도 전개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 모두가 명심할 백범의 유언, 귀담아 실천했더라면 민족사의 획기적 전환을 도모할 수 있었을 유언이 있으니 “현실이냐 비현실이냐가 아니라 정도냐 사도냐가 관건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홍원식 원광대 통일헌법 교수
2005-11-11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