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아랫집 담배연기’ 법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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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길회 기자
수정 2005-10-25 00:00
입력 2005-10-25 00:00
서울 강서구의 아파트에 사는 A(31)씨는 한달 전부터 집에만 오면 두통에 시달린다. 새로 이사 온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 냄새 탓이다. 골판지 박스로 베란다 난간 틈새를 막고 방 안에 숯도 갖다 놓았지만 소용 없었다. 아랫집에 몇 차례 경고를 했지만 그때마다 “내집에서 내가 피우는 것”이라는 말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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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흡연자 “내 집에서도 담배 연기 맡아야 하나”

아파트, 빌라와 같은 공동주택내 흡연권·혐연권 분쟁이 확산되고 있다. A씨처럼 이웃에서 나오는 담배 연기와 냄새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지만 흡연자 역시 자기만의 공간에서 하는 일이라 양쪽간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A씨는 “나도 내 집에서 담배 연기를 맡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서 “자기 집이라고 무조건 흡연권을 주장하는 것은 아파트에서 내 집이랍시고 24시간 쿵쾅거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곧 아랫집에 대해 흡연금지 가처분소송을 낼 생각이다. 하지만 이웃집의 담배 냄새가 자기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입증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회사원 문모(26·서울 논현동)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두 집 대문이 마주 보는 구조의 계단식 빌라에 사는데 옆집 사람이 복도에 나와 담배를 피우면 집으로 고스란히 냄새가 들어온다. 문씨는 “자기야 가족들을 위해서 밖에 나와 피운다지만 이웃이 피해를 보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흥분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이복근 부장은 “상담 중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신고 다음으로 많은 것이 주거지 내 간접흡연 피해 호소”라고 했다.

부모들 “기침하는 아기 속상해”

공동주택내 간접흡연의 피해 체감도는 아기가 있는 경우 훨씬 크다. 대구에 사는 이모(31)씨는 “아기 키우는 집은 환기가 중요한데도 아랫집 담배 연기에 창문 여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다.”면서 “하지만 자기 집에서 피우는 걸 뭐라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경남 김해에 사는 김모(22)씨는 “하루는 온 집안에 담배 냄새가 진동해 확인해 봤더니 아파트 1층 사람이 자기 집 화장실에서 피운 담배 연기가 환기통으로 우리 집까지 올라온 것이었다.”면서 “다음 달에 돌이 되는 아기가 기침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너무 속이 상했다.”고 말했다.

흡연자 “내가 죄인이냐”

하지만 흡연자들도 “도대체 어디에서 담배를 피우라는 거냐.”고 반발한다. 대부분 건물이 금연구역인데 내집에서조차 마음대로 못하느냐는 것이다. 한국담배소비자연맹 홍성용 사업부장은 “옆집이나 윗집에 전해지는 것은 연기가 아닌 냄새일 뿐”이라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죄인도 아닌데 자기 집에서 피우는 것에 대해 소송까지 걸겠다는 것은 심하다.”고 했다.



현행법상 주거지에서 흡연을 막을 법적 근거는 없다. 흡연금지 가처분 소송을 낼 경우 민법상 ‘담배 연기가 이웃간에 통상적으로 참아야 하는 범위에 속하는가.’에 대한 판단이 법원의 결정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공동주거 건물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곳은 없다. 올 6월 미국 뉴욕의 한 시의원이 공공아파트의 50%를 우선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2010년까지 공공아파트 내 흡연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2005-10-2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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