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석류/심재억 문화부 차장
수정 2005-10-18 00:00
입력 2005-10-18 00:00
너무 셔 모양에 비해 맛은 별로였지만,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군침을 삼키며 쳐다보곤 해 그걸 지켜야 하는 내게는 사람들의 그런 표정이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밤중에 일어났다. 저만 하면 잘 익어 따먹어도 되겠다 싶었는데 자고 나니 꼭대기 몇개 빼고는 모조리 ‘소탕’이 되고 없었다. 잠이 덜 깬 내 머릿속에서 잉잉,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부리나케 할머니에게 이르러 갔더니 잘 지키라시던 때와는 딴판으로 “뒤뜰에 또 한 그루 있으니 그건 보시한 셈 치자.”며 내 머리를 쓸어주셨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할머니는 석류보다 할아버지가 심으신 석류나무를 지키는 일에 더 관심이 크셨다. 그 해 늦가을, 할머니는 석류 한 개를 따들고는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 이렇게 고하셨다.“자, 맛이나 보슈. 느리(결과)도 못 볼 걸 키우느라 애만 썼으니….”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10-1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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