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언어 쓰레기/육철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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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철수 기자
수정 2005-10-10 00:00
입력 2005-10-10 00:00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글, 무슨 말을 쓰고 있을까. 최악의 경우 제대로 된 글을 갖고 있지 않았던 청나라 만주족처럼 국가와 민족이 모두 사라지는, 험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민족이 겨우 명맥을 유지했더라도 한자문화에 흡수돼 살다가 일제강점기엔 일본 문자를 썼을 테고, 광복 후에는 영어·러시아어·중국어 같은 외국의 문자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 고유의 말에다 어느 나라 문자인지도 모를 ‘잡탕언어’가 우리의 정신(혼)을 어지럽혔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지구상에는 6800여종의 말이 존재한다. 국가 수가 230 안팎임을 고려할 때 같은 나라에도 여러 가지 말이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말이 있더라도 그걸 종이에 옮길 만한 문자를 가진 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생각을 다듬고 정서를 나누며,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다. 언어가 국가적·민족적으로 가장 소중한 가치요, 문화유산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한글 창제 오백쉰아홉 돌을 맞아 되돌아보니 한글사랑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부끄럽다. 보도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포털과 커뮤니티·게임업체들이 한글 오·남용과 언어폭력 등 ‘언어쓰레기’를 치우는 데 연간 2900억∼5800억원의 정화비용을 쓰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일반 기업의 인터넷 사이트나 인터넷 쇼핑몰, 공공기관 등에서 허비하는 돈까지 합치면 언어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경제적 손실이 수조원은 족히 될 것이라고 한다.

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들은 한글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문자’(미국 언어학자 레드야드),‘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 가운데 하나’(영국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문화학자 존 맨)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유네스코는 1997년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했다.

그뿐인가. 한글에는 사람과 하늘과 땅, 그리고 겨레에 대한 사랑이 들어 있다. 최첨단 정보화 시대를 선도하는 세계적 문자로도 입증됐다. 그런 한글을 쓰레기로 만들어 욕보이려면 차라리 글문을 닫는 게 낫다. 말과 글은 사람의 인격과 품위다. 늘 바르고 깨끗하게 사용하는 습관이 그래서 중요하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5-10-1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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