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449)-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5)
수정 2005-10-10 00:00
입력 2005-10-10 00:00
제2장 性善說(25)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야말로 실로 못하는 일 없이 다하고 있음(無爲無不爲)’의 노자적 무위사상에 양자는 비록 터럭 한 올이라도 뽑지 않고 철저하게 무위함을 더 첨가하였던 것이다.
일찍이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부러 문에서 나가지 않더라도 천하의 일을 알 수 있으며, 창으로 엿보지 않아도 천도(天道)를 짐작할 수 있다. 도리어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적어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성인은 가지 않고 알며 보지 않고도 차별을 이해하며 하지 않고도 이룬다.”
노자의 계승자였던 양주의 눈으로 보면 ‘만인을 평등하게 이롭게 하고 만인을 평등하게 사랑하여야 한다.’는 묵자의 ‘겸애’는 일부러 문밖에 나가고 창을 통해 세상을 엿보려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 아니라 유위(有爲)의 극치였던 것이다.
부처도 노자가 말하였던 무위와 비슷한 설법을 보적경(寶積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마음이란 무엇입니까.’하고 묻는 제자 가섭(迦葉)에게 설법한 그 유명한 내용은 ‘애욕에 물들고 분노에 떨고 어리석음으로 아득하게 되는 것은 어떠한 마음인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과거의 마음이라면 그것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다. 미래의 마음이라면 아직 오지 않은 것이고, 현재의 마음이라면 머무는 일도 없다.’라는 금강석과 같은 진리의 서두로 시작된다.
그러고 나서 부처는 무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이와 같이 남김없이 관찰해 봐도 마음의 정체는 알 수 없다. 즉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얻을 수 없는 그것은 과거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고, 현재에도 없다.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없는 것은 삼제를 초월해 있다. 삼제를 초월한 것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은 생기는 일이 없다. 생기는 일이 없는 것에는 자성(自性)이 없다. 자성이 없는 것에는 일어나는 일이 없다. 일어나는 일이 없는 것은 사라지는 일이 없다. 사라지는 일이 없는 것에는 지나가버리는 일이 없다. 지나가버리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다. 죽는 일도 없고 태어나는 일도 없다. 가고오고 죽고 나는 일이 없는 곳에는 어떠한 인과(因果)의 생성도 없다. 인과의 생성이 없는 것에는 변화와 작위(作爲)가 없는 무위(無爲)다. 그것은 성인들이 지니고 있는 타고난 본성이다.”
함축적인 결론을 내린다면 부처는 무위보다는 무아(無我)를 더 강조하였고, 노자는 무위를 더 강조하였다. 따라서 부처는 천연(天然)의 청정한 마음을 진리의 궁극으로 보았고, 노자는 자연 그 자체를 무위의 골수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무위야말로 모든 성인들이 지니고 있는 타고난 본성’이라는 부처의 말은 노자에게 정확히 해당되는 공통분모였던 것이다.
이처럼 불교와 도교의 유사점은 결국 중국민족이 도교를 통해 불교를 이해하는 ‘격의불교(格義佛敎)’라는 독특한 사상을 낳았으며, 중국민족의 가장 체질적으로 맞는 화려한 선종(禪宗)을 꽃피우게 하였는데, 양자의 첨예화된 극단주의는 노자의 무위사상이 꽃피운 도교에 있어서의 뛰어난 선풍(禪風)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005-10-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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