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강재언 지음
임창용 기자
수정 2005-09-24 00:00
입력 2005-09-24 00:00
1420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송희경은 9개월간의 일본 여행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위와같이 노래했다. 이종무의 쓰시마 정벌 이듬해여서 일본측 분위기가 매우 험악하던 때였다.
이때부터 시작된 조선 조정의 통신사 파견은 조선과 일본 교류의 다리가 되어 1811년까지 계속된다. 통신사들은 일본 각지에서 정치가, 문인, 승려들과 교류하며 정치상황과 풍속을 관찰하고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1420년의 사절단 기록인 ‘노송당일본행록(老松堂日本行錄)´,1596년 임진왜란 도중 강화를 위해 보낸 통신사들의 기록인 ‘일본왕환일기(日本往還日記)´,1607년 사절단의 기록인 ‘해사록(海사錄)´,1617년 파견된 조선통신사 종사관 이경직의 일본기행일기 ‘부상록(扶桑錄)´ 등등.
이같은 조선통신사들의 일본 기행문들을 통해 조선·일본 교류사를 살펴본 책 ‘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강재언 지음, 이규수 옮김, 한길사 펴냄)이 나왔다. 저자는 일본에서 조선근대사상사 연구에 매진해온 재일 사학자다.
통신사들의 기행록은 ‘왜구’나 ‘오랑캐’로 여겨졌던 기존의 일본 인식을 넘어 경제적 풍요와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상과 문물이 싹트고 있던 일본사회를 보여준다.
당시 쇼군을 중심으로 한 일본 정치 지도자들은 유교보다는 천문학과 본초학 등 실증적·실용적 학문을 선호했다.
1720년엔 기독교 관련 서적을 제외한 모든 서양 과학서적의 수입을 허가한다. 조선에선 오로지 성리학만 강조되었던 반면 일본으로는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구의 풍성한 지식이 쏟아져 들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꽃핀 이른 바 ‘난학(蘭學)´이 양국 근대화의 차이를 결정적으로 만들었다고 지은이는 보고 있다.1만 4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2005-09-2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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