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입은 여성들 “임신이 겁나요”
김준석 기자
수정 2005-08-31 00:00
입력 2005-08-31 00:00
2000년 경찰에 투신, 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여경 A씨는 관내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면서도 정작 소중한 자기 몸은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20대 후반 나이에 유산 경험이 벌써 3차례.2003년 7월 마지막 유산 이후로는 아이를 가질 엄두도 못내고 있다.2003년 당시 임신했다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지만 근무 형태를 조정하기가 어렵다는 답만 돌아왔다.“하루 3교대인 지구대 근무에서 당신이 빠지면 전체 근무일정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생각해보면 과거 2차례 유산했을 때도 그랬다.
●아이 낳고 복귀하자 마자 곧바로 야간근무
서울 관악경찰서 정보1계장 강미현(40) 경위는 결혼 10년차 주부다. 그는 “여경들의 임신과 출산, 육아는 제도적으로는 잘 갖춰져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성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쯤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강 경위는 벌써 꽤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복귀하자마자 곧바로 야근에 투입됐던 사실을 기억해 내곤 씁쓸해했다.
제복을 입는 여성들이 임신했을 때 겪는 또다른 고민은 ‘제복’이다. 일반 기업체 임부복처럼 임신부의 몸을 충분히 고려해 제작된 게 아니라는 불만이 많다.
●치마형태 임부복 업무에 적합하지 않아
서울 종로소방서에서 근무하는 황윤희(28)씨는 2002년 임신했을 때 임신부를 위한 근무복을 입지 못했다. 임신 사실을 쉽게 밝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임부복이 업무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급받은 임부복은 치마 형태였다. 구급차에 올라 환자를 돌보는 게 황씨의 일이었지만 차에 오르내릴 때마다 치마가 펄럭여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고민 끝에 황씨는 치마 대신 남자들이 입는 큰 바지를 입었다. 황씨는 “옷이 불편한 것도 그렇지만 출동할 때마다 울리는 커다란 사이렌 소리에 뱃속의 태아가 혹시 놀라지는 않을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황씨는 임신 7개월이 넘어서야 구급요원 근무에서 내근으로 옮길 수 있었다. 임신기간 못지않게 출산 후에 나타나는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24시간 비상근무를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아이를 돌보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황씨는 “많은 여성 동료들이 유산을 경험했다.”면서 “임신과 출산은 물론 출산 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직장을 계속 다닐지 회의감이 들게 하는 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소방방재청도 지난해 임신한 직원은 야근을 시키지 말고 내근부서로 돌리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현실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 여성 소방공무원은 “임신을 했다고 말하자 겉으로 임신한 티가 날 때까지는 외근을 계속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임신티 날 때까지 외근 계속하라” 지시도
남성들 틈바구니에서 어려움을 겪기는 여군도 마찬가지다.‘금녀’의 잔재들이 경찰이나 소방 쪽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게 여군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심지어 군에서는 1988년 이전까지는 간호병과를 빼고는 여군의 임신이 아예 허용되지 않는 엄청난 인권침해가 지속돼 왔다. 장교들은 결혼만 허용됐고 부사관은 출산은 물론 결혼도 불가능했다.88년 여군의 출산 제한이 풀린 이후에도 현실적인 조치는 한참 뒤에야 이뤄졌다. 올해 6월에야 겨우 임신한 여군들에 대해 당직근무를 하지 않게 하는 지침이 해군·공군으로 확대됐다.
육군의 한 영관급 여군장교는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여군이 임신하면 무조건 제대를 해야 했다.”면서 “이 때문에 선배들 중에는 결혼해도 임신을 안 하거나 아예 결혼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2005-08-3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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