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지역문제 극복하려면 차라리 합당을/이광호 진보정치 전 편집위원장
수정 2005-08-08 08:15
입력 2005-08-08 00:00
군부 독재 앞에서 하나가 됐던 민주화 세력이 지역으로 분열된 이후 90년 3당 합당은 그 상처를 종양 수준까지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이제 이 종양을 질병이 아니라 몸의 일부인 양 생각하는 쪽도 있다.
이런 한국 정치의 난치병에 정면으로 도전한 용감한 정치인이 한 명 있었다. 바보 노무현. 그가 대통령이 됐다. 임기 절반이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그는 지역 문제 해결을 들고 나왔다. 연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제안했다. 대통령 권력까지 내놓겠다며 비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던 시절 ‘노무현 문제의 해답은 민주노동당이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한 편 쓴 적이 있다. 제법 긴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한국정치 발전의 치명적 걸림돌인 지역 중심의 정당 구조를 해체시키는 것은 너무 중요해서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정치발전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바보처럼 도전하고 있는 노무현의 진정성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비극은 노무현은 자신이 제기하는 문제의 해답을 가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역 분열 자체가 존재 조건인 보수적 지역정당 구조가 해체되지 않는 한 어떤 훌륭한 정치인도, 그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가 계급정치, 정책정당 구도로 바뀌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경쟁과 협력 구도가 구축될 때 비로소 한국 정치의 천형처럼 비치는 이 문제는 해결의 가닥을 잡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연정의 근거, 특히 대연정의 당위성을 지역 정치 해소에서 찾고 있다. 필자는 몇 가지 이유로 그것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더 나아가 그런 방식으로 성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 종양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고 버티는 것은 그걸 유지하는 강력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보다 강한 카운터 파워가 없으면 종양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힘은 노무현의 또 다른 이미지였던 서민 대통령으로서의 성공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었다. 서민은 대한민국 팔도에 가장 많이 있는 사람들이다. 지역변수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세력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현재 그 힘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만약 지역문제를 가지고 난국을 돌파하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그것은 수순이 완전히 잘못된 바둑을 두고 있는 꼴이다.
다음으로는 그 방법 또한 잘못됐다는 점이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라는 방법론이 그렇다는 얘기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은 앞에서 언급한 맥락에서 보면 지역정치를 극복하는 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말하는 대연정은 사실상 합당으로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대통령이 고백했듯 주요 정책에서 별 차이가 없다면 그것이 바람직하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전국적인 지지를 받는 보수정당 하나를 튼튼하게 만들어내는 게 지역문제 해결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동시에 지역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민주노동당이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고, 다른 정당들도 ‘이론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동의하고 있는 독일식 1인2표 정당명부제를 도입해야 한다.
노회찬 의원이 제안한 국민투표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특정 지역의 ‘말뚝’이 아니라 ‘정당’ 자체를 후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호 진보정치 전 편집위원장
2005-08-08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