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라운지] 단양군청 탁구감독 정현숙
임일영 기자
수정 2005-07-29 08:12
입력 2005-07-29 00:00
그로부터 30여년이 훌쩍 흘렀다. 인구 3만 8000여명에 불과한 충북 단양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창단 3년도 채 안된 단양군청 탁구팀의 이은희(19)가 지난 11일 미국 포트로더데일에서 열린 US여자오픈 주니어(21세 이하) 단식 패권을 거머쥔 것. 곳곳엔 플래카드가 걸렸고 워낙 얘깃거리가 없는 작은 동네라 주민들이 모이기만 하면 “은희가 미국가서 우승했다며?”라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탁구영웅, 생활체육전도사로
정현숙은 77버밍엄세계선수권 직후 라켓을 놓았다. 요즘 같으면 한창 뛸 나이가 아닌가.“그땐 스물다섯이면 할머니 선수였어요.”라며 말문을 연 그는 “사실 연이은 준우승으로 스트레스가 심했죠. 지나가다 공 튕기는 소리만 들려도 소름이 돋을 만큼 탁구가 싫었어요.”라고 털어놨다.
한동안 ‘자연인’ 정현숙으로 살던 그는 85년 방송리포터로 나타나 차분한 말솜씨를 뽐냈고,90년엔 ‘정현숙 탁구교실’을 열어 천직인 탁구 곁으로 돌아왔다.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때 중국인들이 손바닥만한 장소가 있어도 탁구대를 놓고 즐기는 것을 보고 ‘중국 탁구의 저력’을 실감해 문을 열었다는 탁구교실은 어느덧 16년째에 접어들었다.“300여명씩 몰렸던 초창기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잠실과 단양 두 곳에 150명 정도는 될 걸요.”라고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 곳을 통해 탁구의 맛을 본 이만 해도 1만명은 족히 된다고 한다.
●‘생체’전도사, 감독으로
물론 세세한 부문은 최정안 코치가 지도하지만 정 감독도 1주일에 2∼3일씩 단양에 머물며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세계챔피언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굴지의 실업팀들이 고교 에이스들을 훑어가는 현실에서 지자체 팀이 살아남기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단양군청은 지난해 7월 종별선수권 3위, 전국체전 3위에 이어 11월 MBC왕중왕전에선 준우승의 기염을 토했다. 소속선수들의 고교 성적을 생각한다면 꿈도 못 꿀 일로 2배 이상의 돈을 퍼붓는 다른 팀들도 단양군청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의 지갑 속엔 5∼6종류의 명함이 있다. 여성체육인 가운데 그 정도로 명성을 구축한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감투’를 쓴 탓. 하지만 정현숙은 ‘단양군청 감독’으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늦게 들어선 지도자의 길에 애착이 크기 때문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사회체육까지 넘나든 정 감독은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은 바늘과 실 같아요.”라면서 “클럽이 활성화되면 성인들에겐 삶의 활력소가 될 테고, 어렸을 때부터 즐기다 보면 세계를 주름잡는 국가대표도 나오지 말란 법 없죠.”라고 활짝 웃었다. 실업팀 감독과 생활체육 전도사, 거기에 체육행정가로서 분초를 다퉈 사느라 10년째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는 그에게 ‘53’이란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했다.
단양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05-07-2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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